요한계시록 강해가 이제 14장까지 끝났다.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 최고의 난관에 봉착했다. 해석 자체가 난해하다기 보다는 두가지 해석이 팽팽하게 대립이 되면서도 어느 쪽도 강력하고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14:14-16절에 나온 인자의 곡식을 거두는 장면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는 장면으로 해석하고 14:17-20절에 나오는 포도를 거두는 장면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으로 본다(Boxall, 213; Brown, Fausset, & Jamieson 704; Crafer, 698; Easley, 253-254; Jamieson, Fausset & Brown, 586).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두가지이다. 먼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추수 장면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을 모으는 장면이기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14:14-16절의 곡식 수확 장면에는 심판의 장면이 없고 14:17-20절의 포도 수확 장면에는 심판의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14:14-16절의 곡식 수확 장면과 14:17-20절의 포도 수확 장면 둘 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한다(Beale, 772-73; Beasley-Murry, 1444; Keener, Rev. 14:14-16; Michaels, Rev. 14:14-16; Morris, 178; Mounce, 278; Mulholland, 537; Patterson, 296).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첫째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모으는 장면이라면 택하신 자들에게 말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구름 위에 낫을 들고 있는 인자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둘째 마태복음 13:24-30절에 나오는 밀과 가라지를 모으는 것을 볼 때 곡식을 거두는 것은 택함 받은 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모아 태우는 심판도 포함한다며 알곡을 거두는 장면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쪽 다 그럴 듯 하면서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다가 신약성경의 다른 곳을 보기 보다는 먼저 요한 계시록의 문맥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인자 같은 이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썼다고 했다. 여기서 면류관은 왕관을 나타내는 디아데마(διάδημα)가 아니라 승리한 자에게 주는 상을 뜻하는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이다. 스테파노스는 올림픽 경기와 같은 경기에서 승리한 자나 승리하고 개선한 왕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자 같은 이의 머리에 있는 스테파노스는 개선한 왕이 대적들을 포로로 잡아와서 재판을 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Beale도 황금 월계관은 마지막 날의 심판주로서의 인자의 역할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Beale, 770). 게다가 예리한 낫은 그러한 인자의 법정에서 석될 수 밖에 없다.
또 마태복음 13:24-30절의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거둔다는 말은 밀이나 가라지나 둘 다 낫으로 벤다는 뜻이 아니라 모아들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밀과 가라지를 따로 따로 모은다는 것에 초점이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4;14-16절에서는 예리한 낫 또는 낫이라는 말이 세번이나 반복이 된다. 포도 수확의 장면에서도 예리한 낫이 반복되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한 그리스도가 황금 월계관을 쓰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들고 재판하는 장면은 택하신 자들을 모으는 장면으로 보기 어렵다.
또 한가지 근거는 낫을 땅에 휘둘렀다는 말인데 원어는 낫을 땅에 던졌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던졌다는 말이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는 12:4절에서 용이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졌다고 할 때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심판이나 재앙을 땅에 던지는 경우에 썼다. 그렇다면 낫을 땅에 던지는 장면을 택하신 자들을 모으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인자 같은 이가 구름 위에 앉아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계신 인자가 통치권을 나타내는 왕관을 쓰고 있지 않고 승리하고 개선한 왕을 상징하는 황금 월계관을 쓰고 있다는 것은 개선한 왕이신 그리스도가 성문에 앉아 대적들을 재판하고 그 낫으로 처형시키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