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2절에는 다섯개의 명령이 나온다. 이 명령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그리스도의 작전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연속동작들이다. 첫째 명령은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선포하는가? 둘째명령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다. 힘쓰라는 말은 수많은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높은 곳에 서는 모습이다. 대장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전달하려고 높은 곳에 선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은 좋은 때 나쁜 때 라는 뜻이다. 명령이 떨어지면 기회가 좋든 나쁘든 무조건 전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전하는 말씀을 잘 들으려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라면 전하기 좋은 때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거부한다면 전하기 좋지 않은 때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같은 태도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이다.
셋째 명령과 넷째 명령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경책이란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명령을 듣고도 따르지 않을 때 그 잘못을 말로 가르쳐서 지적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을 때 행해야 하는 명령이 넷째 명령인 “경계하고” 이다. 경계하라는 말은 말로 잘못을 지적하며 책망해서 듣지 않을 때 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명령은 “권하라” 이다. 말로 책망하고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라 했는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쫓아내라는 말이 나와야 옳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친절한 태도로 권면을 하라니 정말 당황스러운 명령이다. 말로 가르치고 징계를 함과 동시에 친절한 태도로 권면해야 하는 것이다. 계속 말로 책망하고 벌만 내리면 안되는 것이다.
“오래참음으로 가르치면서” 라는 말은 어떻게 준비하고 서서 책망하고 벌을 주며 권면할지를 말한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자리에 서서 책망하고 벌을 주고 권면을 해도 듣지 않으면 보통 두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나는 듣지 않는 사람을 빼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귀를 기울여 듣는 가르치기 좋은 때가 된다. 다른 하나는 듣기 싫어하는 가르침을 빼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귀를 틀어막고 듣기 싫다고 소리치지 않을테니 역시 가르치기 좋은 때가 된다. 그러나 빼 버리고 싶은 사람을 오래 참음으로 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빼 버리고 싶은 내용도 오래 참으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3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2절과 연결된다. 왜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이 명령들을 수행해야 하는가 하면이라는 뜻이다. 때가 이른다는 말은 나쁜 때가 이른다는 것이다. 가르치기 좋은 때가 아니라 가르치기 아주 고약한 나쁜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른 교훈이란 건강한 가르침이란 뜻인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뜻한다. 건강한 복음은 높이 받들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르치기 고약한 때가 오면 사람들은 안받는다는 것이다.
"귀가 가려워서" 라는 말은 이발소에서 면봉으로 귀를 살살 긁어주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가르치기 고약한 때가 오면 사람들은 건전한 가르침은 집어 던져 버리고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스승들만 모아들인다는 것이다. 많이 둔다는 말은 잔뜩 수집해서 쌓아놓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스승을 수집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좋아할 만한 축복의 말씀이나 감동과 재미를 주는 말씀만 전하는 스승이라면 열광을 하며 모으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가르치기 고약한 때이다.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고 듣기 싫다고 고함을 치더라도 건전한 복음을 모두 다 전해야 한다. 사람도 빼 버리지 말고 말씀도 빼 버리지 말고 다 전해야 한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축복의 말만 전하면 인정 받고 박수 갈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하게 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80년대 이발소에서 귀 파주던 귀 파주던 면도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