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은 "Where's Wally?" 와 같은 숨은 그림찾기이다. 하지만 단순히 찾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찾아서 연결해야 하기에 또한 "Jigsaw Puzzle" 맞추기와도 같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고 성경도 말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말로 듣고 난 뒤에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그림언어(imagery)를 사용해서 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 기록당시 누구나 듣기만하면 연상하던 그림언어들이 이제는 숨겨져있기 때문이다. 숨은 그림은 원어의 어원에 숨겨져 있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성경의 숨은 그림 찾기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문맥을 통해 일관되게 연결된 동영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모데후서 2:14-19절도 역시 숨은 그림 찾기와 숨은 그림을 연결해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를 튼튼히 세우기 위해서 거짓교사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하는 대신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기를 힘쓰라" 라고 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은 하나님 곁에 가까이 선다{παρ(파라)+ίστημι(히스테미)}는 뜻이다. 하나님 곁에 가까이 서려면 두가지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첫째는 "인정된 자" 이다. 인정된 자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이다. 자격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하는데 일을 잘해서 그 자격을 준 하나님이 부끄럽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라는 것이다.
"옳게 분별하며" 라는 말은 본래 "똑바로 자른다{ὀρθο(오르쏘)+τομέω(토메오)}" 는 뜻이다. 진리의 말씀을 똑바로 잘라야 한다는 뜻인데 orthodox의 ortho와 자른다는 뜻의 tomeo가 합쳐진 말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그림언어(imagery)을 세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대부분 주석가들은 솜씨 좋은 목수나 석수장이가 나무나 돌을 똑바로 자르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둘째는 솜씨 좋은 농부가 밭을 갈 때 이랑을 똑바로 간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셋째는 기술이 뛰어난 토목 기술자의 모습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같은 말이 다른 곳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를 찾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신약성경에는 이곳에 단 한번만 나온 말이다. 다행히도 70인역 구약성서의 잠언 3:6절과 11:5절에 나온다. 두 구절 다 똑바로 자른다는 말을 길을 곧게 내는 토목기술자의 그림언어로 설명했다. 그러나 인정받은 숙련된 일꾼이라는 말 때문에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토목 기술자의 그림보다는 숙련된 목공이나 석공이라고 말을 한다.
이런 경우 같은 단어가 다른 곳에서 쓰인 예를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자료가 있다. 그것은 특별한 기술도 필요없고 쉬운 것이다. 그것은 전후 문맥이다. 전후 문맥에서 성경 기록자가 어떤 그림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다. 이처럼 전후 문맥을 통해 의미를 찾는 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도 같다. 세살난 우리 외손자 연호가 퍼즐 맞추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연호는 먼저 모서리에 기준이 될만한 조각을 놓는다. 그 다음에 같은 색깔 같은 그림을 찾아 맞는 조각을 하나씩 연결해 나간다. 이제 진리의 말씀을 똑바로 자르는 그림 조각이 모서리에 놓여있다. 이제 나머지 조각을 찾아 맞춰보면 된다. 문제는 그 그림들이 번역된 성경에서는 지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원어를 보고 원액을 짜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 조각은 16절의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라는 말에 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란 디모데전후서 전체 문맥에서 보면 쓸데없는 잡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의 사랑이 빠진 설교와 가르침이다. 버리라는 말은 원어에서 옆으로 비켜 서라{(περι(페리)+ΐστημι(히스테미)}는 뜻이다. 위험하기 때문에 비켜서라는 것이다.
어째서 비켜 서라고 할까? 그 동영상이 비켜 서라는 말 다음에 나온다.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라는 말에서 나아간다는 말은 앞을 쳐낸다{προ(프로)+κόπτω(콥토)} 는 뜻이다. 이 동영상은 선발대가 본대보다 앞서 가면서 장애물들을 쳐내며 길을 내는 모습이다. 뒤에서 따라오는 전차부대와 기병대가 갈 길을 여는 동영상이다. 당시에는 선발대인 공병대는 칼이나 톱으로 자르며 길을 냈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나아간다는 말은 아주 많이 나갔다는 뜻이다. 오늘날은 불도저로 밀고 Tree-eating machine으로 베어낸 잡목들을 갈아 버린다. 이러한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하니 비켜 서라는 것이다. 이 그림은 15절에서 똑바로 자른다는 말이 길을 내는 토목 기술자의 그림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제 두조각이 맞은 셈이다.
세번째 조각은 17절의 "그들의 말은 악성종양(γάγγραινα)이 퍼져나감 같은데" 라는 말에 있다. 악성 종양이란 오늘날 주석가들이 암과 같다고 하지만 이는 팔이나 다리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병이다. 잘라내지 않으면 점점 더 썩어 들어가서 몸 전체를 썩게 하는 병이다. 대부분 성경 해석자들이 이 말을 의학용어라고 설명을 한다. 그리스어 사전들도 하나같이 의학용어라고 설명을 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퍼져나간다" 라는 말도 역시 질병이 몸 전체로 점점 퍼져 나가는 것을 뜻하는 의학용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만약 악성종양이라면 길을 똑바로 내는 그림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질병의 그림으로 바꾼 것이 되고 퍼즐은 전혀 맞지 않게 된다. 이건 고대 글이 아닌 구술로 말을 전하던 사람들(oral communicator)들의 말하기 방식에 맞지 않는다. 바울서신도 글로 기록되었지만 전달자가 바울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으로 전달했던 것이다.
이 말의 본 뜻은 먹는다는 뜻이다. 두개의 사전을 보면 그라오(γράω) 또는 그라이노(γραίνω) 라는 말에서 왔다고 되어있다(Thayer's Greek Lexicon; DANK Lexicon). 이 말이 담고 있는 그림은 싹 다 먹어 치우는 그림이다. "퍼져나간다" 라는 말은 노메(νομή) 인데 양이나 염소가 풀을 뜯는 풀밭이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가 갖고 있는 원어의 본 뜻을 살려 번역한다면 "그들의 말은 마치 싹 다 먹어치우는 초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라는 뜻이 된다. 17세기 영국 침레교회 목사였던 John Gill이 쓴 주석을 보면 파플라고니아의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한 염소 캐릭터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파플라고니아는 소아시아 북쪽 흑해에 인접해 있는 나라였는데 바울 시대에는 로마제국 영토였다. 그 염소 캐릭터는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 곳의 풀을 싹 다 뜯어먹는다고 한다.
이 세조각을 한번 연결해 보자. 15절에서 진리의 말씀의 길을 똑바로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디모데의 모습이 16절은 에베소의 거짓교사들이 공병대처럼 길을 쳐 내는 모습과 대조된다. 17절에서는 이러한 거짓교사들이 길을 쳐 내는 모습이 파플라고니아의 염소 캐릭터처럼 푸른 초장을 싹 먹어 치우며 간다는 것이다. 푸른 풀밭은 주로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이미지라고 본다면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이제 보니 푸른 초장에서 진리의 말씀은 싹 다 먹어치우가 독초들과 가시덤불과 황량한 맨땅만 남겨놓는 그림이다. 이들이 낸 길에는 생명의 말씀이 하나도 없고 16절에 나오는 망령되고 헛된 말 뿐이다.
마지막으로 퍼즐 한조각이 더 있다. 18절에 보면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라고 했는데 그릇되었다는 뜻의 "아스토케오(ἀστοχέω)" 라는 말이 그 남은 한조각이다. "아스토케오(ἀστοχέω)"는 겨냥해서 쏜다는 뜻을 가진 스토카오마아(στοχάζομαι)에 부정의 뜻을 가진 alpha를 덧붙인 말이다. 제대로 겨냥하지 않고 엉뚱한 곳을 겨냥해서 쏘았다는 뜻이다. 화살이 과녁에서 멀리 빗나갔을 때 쓰는 말이다. 16절에서 이들은 길을 아주 멀리 쳐 냈다. 그런데 이들이 낸 긴을 한참 빗나갔다는 것이다. 앞의 세조각의 퍼즐과 맞추어 본다면 이번에는 길을 내는 측량기사가 길의 토지측량 도구를 이용해서 목표점을 겨냥하고 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이 겨냥한 곳은 진리가 아니다. 같은 말이 디모데전서 1:6절에서는 사랑으로부터 빗나갔다 라고 했고 6:21절에서는 믿음으로부터 빗나갔다 라고 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진리에서 빗나갔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이단들이 잘못된 목표인 멸망으로 인도해 나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빗나갔는가? 바울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옛사람은 이미 죽었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이미 부활은 끝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앞으로 육체의 부활은 없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저들의 가르침은 빗나간 화살과도 같고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길을 낸 것과도 같은 것이다. 실수로 과녁을 잘못 맞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라는 목표를 겨냥하고 길을 내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 전체를 꿰는 중요한 세 단어가 있다. 세 단어 모두 서다 라는 말 앞에 다른 말을 붙여서 만든 말들이다. 15절에서는 하나님 곁에 가까이 서라(παρ+ίστημι)고 했고 16절에서는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옆으로 비켜 서라(περι+ΐστημι)라고 했다. 19절에서는 "불의에서 떠날지어다{ἀφ(아포)+ίστημι(히스테미)}" 라고 했는데 이는 그들의 불의함은 전염병과도 같으니 아주 멀리서야 한다는 것이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교회 밖에서 하는 세상 강연이 아니다.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이라고 선포되고 가르치는 말씀이다. 성경을 그대로 강해한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셔서 제자들의 말을 씻긴 그분을 빼놓고 전한다면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망령되고 헛된 말이다. 그런 설교와 선포는 세상의 가치와 철학이 가득 담겨있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양념으로 조금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말잔치는 마치 불도저와 같이 밀어 버리고 나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Tree-eating machine 과도 같으니 얼른 옆으로 비켜 서야 하는 것이다. 또 저들의 거짓 경건은 전염병과도 같으니 멀리 떨어져 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설교나 가르침을 듣고 따라간다면 생명의 말씀은 없는 잡초와 독초와 가시나무들만 먹고 따라가다가 죽게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