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1-13절은 고린도 성도들 마음 속에 있는 세상적은 것들을 다 버려서 그 마음의 공간을 넓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다 버리고 비운 자신들을 자랑하며 자신들을 닮으라고 한 것이다. 집 안에 있는 잡다한 가구들이나 물건들을 버리면 집이 넓어지는 것처럼 마음의 공간 안에서 세상적인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어지는 6:14-7:1절은 그렇게 다 비워 놓은 뒤에도 또 다시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다시 세상적인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방법을 6:14-16a에서 다섯가지로 제시한다. 이 다섯가지는 연결된 그림으로 읽어야 한다.
첫번째 그림은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가축의 그림이다. 멍에를 맨다는 말은 원어에서 다른 이라는 뜻의 말과 멍에를 메운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신명기 22:10절에서 소와 나귀를 한 멍에를 메워 밭을 갈지 말라고 한 것과도 같은 그림이다. 서로 다른 동물과 함께 멍에를 메면 함께 한 방향으로 밭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믿지 않는 자란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이 아니다. 불신자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을 가리킨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사실은 믿지 않고 율법을 가르치던 자들이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세상 영광을 향해 고린도 성도들을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다른 동물들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이다.
두번째 그림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설명하며 이어간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라고 했다. 함께 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함께(μετα)"라는 말과 "잡아 당긴다(ὀχέω)"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의 명사형(μετοχὴ)이다. ESV와 NASB는 파트너쉽이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원어가 담고 있는 그림은 함께 같은 방향으로 잡아 당긴다는 뜻이다. 그러면 함께 멍에를 멘 뒤 함께 같은 방향으로 잡아 당기는 그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의란 구약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자들이다. 불법이란 반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자들이다. 그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당길 수 없기 때문이다.
세번째 그림은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는 말에 담겨있다. 원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빛과 함께하는 교제가 어찌 어둠에게로 향하느냐?"라는 뜻이다. 함께 멍에를 멜 수 없는 이유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잡아당길 수 없다 한 것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당길 수 없다고 빛과 함께 교제를 하던 자들이 어두움을 향해 나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네번째 그림은 세번째와 똑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네번째 그림은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라는 것이다. 역시 원어의 구조 그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화음을 이루는 자가 어찌 벨리알에게로 나가느냐는 것이다. 조화라는 말에서 영어의 Symphony라는 말이 왔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지는 않지만 함께 어울리는 화음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량배들인 벨리알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다른 불협화음을 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는 자들이 어떻게 불협화음에게로 나가느냐는 것이다.
세번째와 네번째 그림은 빛과 교제하고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는 자들이 어두움과 벨리알로 표현된 거짓으로 거룩한 척 하는 자들에게 끌려가서는 안된다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끌려가는 그림이 다섯번째 그림인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일치라는 말을 쪼개보면 "함께 아래에 놓는다(συγ-κατα-τίθημι)"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에게 끌려가서 나란히 함께 놓여있는 그림이다.
여기서 성전은 실제 성전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자들이 바로 성전이다. 그러한 자들이 모인 교회가 또한 성전이다. 그런 하나님의 참된 성전이 거짓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하며 세상 영광을 따라 살던 자들과 어떻게 함께 나란히 놓여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으로 믿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향해 끌어 당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끌려가서 그들과 같은 자리에 나란히 놓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껏 마음 속에 있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다 치워서 넓혀 놓은 그 자리에 다시 더러운 세상 것들로 가득차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단락은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네가지 약속을 하신다는 것이다. 첫째는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이다. 이는 구약에서 광야생활을 하던 백성들의 텐트 한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그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의 텐트 가운데서 사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두루 행하며"이다. 이 두루 행한다는 말은 안에서 걷는다는 뜻이다. 백성들의 천막이 있는 진영 안을 걸어 다니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에 집을 짓고 집 안에만 계시지 않고 백성들 가운데로 두루 다시며 둘러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구경하러 다니시는 것이 아니다.
셋째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이다. 우리 가운데 집을 짓고 사시며 우리들이 사는 곳을 둘러 보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넷째는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이다. 우리는 우리를 살펴보시려고 다니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분은 왕이 민정시찰을 하듯 우리 가운데 사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들을 친히 돌아보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7절에서는 세가지 권고를 한다. 첫째는 떨어져 나오라는 것이다. 함께 멍에를 메고 그동안 끌려 다니며 함께 있었던 그 부정한 자리에서 탈출하라는 뜻이다. 둘째는 그렇게 탈출한 다음에 계속 분리되어 있으라는 것이다. 셋째는 그렇게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면서 다시는 만지지도 말라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세가지 약속이 이어진다. 첫째는 17절 끝부분에 나오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라는 말이다. 그렇게 부정한 곳에서 탈출하여 완전히 분리되고 다시는 만지지도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마중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18절에 나오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이다. 앞에서는 왕과 그 백성들의 관계로 설명했는데 그 왕이 이번에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는 그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7:1절은 이 부분의 결론이다. 이러한 약속을 붙잡고 육과 영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다. 육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이고 영이란 보이지 않는 속 마음이다. 우리의 안과 밖 전체를 완전히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도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항상 우리 가운데 다니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비결이다. 그렇게 해서 거룩함을 완전히 완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