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20절은 11:2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11:2절에서 바울은 신부인 고린도 성도들을 신랑이신 예수님께 인도하는 신랑의 친구 역할을 한다고 했다. 20절은 예수님의 신부인 고린도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다섯 단계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을 유린하는데도 잘도 용납해준다는 것이다. 용납해 준다는 말은 거짓 사도들을 높이 들고 버티는 장면이다. 첫째 단계는 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고린도 성도들을 속여서 완전히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다는 뜻이다(καταδουλοῖ). 그래도 잘도 용납해 준다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잡아 먹는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히 삼킨다는 뜻이다(κατεσθίω). 이는 누가복음 20:47에 “과부의 가산을 삼켜도”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고린도 성도들을 노예로 삼은 다음에 재산을 다 삼켜도 빼았아도 참아준다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개역개정에서 빼앗는다는 말로 번역된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인 고린도 성도들을 노예로 삼고 재산을 다 빼앗은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순결을 빼앗는 모습이다. 그래도 고린도 성도들은 참아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넷째 단계는 얕보아도 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를 짓밟고 올라서서 자신들을 높이는 장면이다. 마지작으로는 뺨을 때려도 참아 준다는 것이다. 뺨을 때리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모욕이다. 앞에서 나온 네가지 보다 훨씬 더 심한 모욕이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거짓 사도들이 대단한 줄 알고 그들을 팔이 아프도록 높이 떠 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이다. 11:8-9절에서는 전쟁터에서 죽은 시체의 옷을 벗겨가듯 마케도니아 성도들을 벗겨왔다 했다. 그러나 이는 마케도니아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이었다. 바울 자신도 노예처럼 일했다. 그렇게 마케도니아 성도들과 바울 자신의 노동으로 먹고 살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가르친 것이다.
21-23절은 바울 자신이 거짓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바울이 그들보다 부족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24-29절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을 자랑하면서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31절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인정 받고 군림하며 왕노릇하기 보다는 우리도 역시 바울처럼 약함을 자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