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7-1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에게 선하시고 환난 날에 피할 요새가 되시고 돌보아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완전히 다 멸하시는 분이시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면 바다와 강이 마르고 땅의 모든 식물들이 마르며 땅들이 모두 흔들리고 뒤집히고 바위들까지 박살이 나게 된다고 했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그런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는 선하시며 산성이 되셔서 지켜 주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7절은 하나님의 속성을 세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진노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에게는 선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바다와 강을 말리시고 땅의 모든 식물들도 말리시고 높은 산과 낮은 산과 평지들을 다 뒤집어 놓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는 선하신 아버지시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둘째 그 하나님이 환난 날의 산성이라 했다. 원수들에게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하나님께로 피하면 그분은 든든한 요새가 되어 주신다. 반면에 원수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로 다 뒤집어 놓으시고 다 쓸어버리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피한 자들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원수들이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그 하나님이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을 안다라고 했다. 안다는 말은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연인관계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은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Butterworth는 안다는 말이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돌보려고 하는 관심이라고 했다(Butterworth, 836). 또 Fausset은 호세아 13:5절과 아모스 3:2절을 근거로 안다는 말이 하나님의 소유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했다(Fausset, 613). 그렇다면 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인 자녀들로 여기고 돌보신다는 뜻인 것이다.
8절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알고 돌보시는 자녀들과는 반대로 자녀들을 해치려는 원수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말한 것이다. 새번역과 NIV는 니느웨를 범람하는 홍수로 끝장을 내신다고 했는데 이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어에 없는 말을 삽입한 것이다. 원어는 단지 범람하는 홍수로 그 장소를 완전히 끝장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로 다 쓸어버리시는 것과 짝을 이루는 말은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신다는 말이다. 흑암이란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대적들은 죽음의 세계로 쫓아버리신다는 것이다.
9절은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사람들, 특별히 니느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라고 질문을 하신다. 어떤 계획을 세워도 여호와께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끝장을 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앗시리아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기에 앗시리아는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10절은 9절에서 말한 앗시리아가 어떻게 끝장이 날 것인지를 설명한 것이다. Johnson은 가시덤불같이 엉클어졌다는 말이 니느웨가 공격을 받았을 때 혼돈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Johnson, 1498-99). Fausset은 가시덤불같이 엉클어졌다는 말이 얽혀 있어 풀 수 없어 일꾼이 통째로 베어다가 불에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Fausset, 614). Johnson은 가시덤불의 비유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한 것이고 Fausset 은 가시덤불의 비유 자체의 그림을 설명한 것이다. 니느웨는 이제 통째로 베어져 불에 던지워질 것이다.
또 다른 비유는 술에 취한 술꾼의 비유이다. Fausset은 술에 취한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고 담대하지만 손가락으로만 건드려도 넘어질 만큼 약하다고 했다(Ibid.). 따라서 앗시리아는 큰소리 뻥뻥 치지만 술에 만취한 술꾼 같아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져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덤불처럼 서로 뒤엉켜 혼돈의 상태인 것과 술꾼에 취한 사람이 혼돈의 상태인 것은 결국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렇게 혼돈에 빠진 앗시리아는 마른 지푸라기처럼 타버린다는 것이다.
11절은 여호와께 악을 행하는 자, 곧 사악한 조언자가 너희 중에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여호와께 악을 행하는 사악한 조언자는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Barker, 182; Johnson, 1499). NIV와 새번역은 니느웨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았다. Nogalski도 여성 단수로 표현되어 있기에 니느웨를 의인화한 것이라고 했다(Nogalski, 614). Austel은 산헤립으로 볼 수도 있고 니느웨를 하나님께 반역하는 중심지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Austel 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사악한 조언자는 사탄에 의해 나타나는 세상 권력의 계열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권력은 적그리스도의 통치로 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Austel, 662).
믿는 자들을 대적하고 괴롭히는 악한 대적들은 가시덤불과도 같이 영적으로 뒤얽혀 있는 상태여서 풀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통째로 잘라서 불에 던져 버리신다. 세상의 영광을 따라 사는 자들은 신실한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괴롭히고 핍박하고 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큰소리를 치지만 만취한 술꾼과도 같이 넘어질 자들이고 마른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타버릴 자들이다. 그러니 그러한 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온 세상을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선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