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9-16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고 매로 때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갚아 주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값진 제물로 드리는 제사보다 정의와 한결 같은 사랑을 근거로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행하길 원하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정의와 한결같은 사랑으로 겸손히 행하지 않은 악인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이어진다.
9절은 미가가 "여호와의 목소리가 그 도시를 향해 외치신다" 라고 전한다. 그 도시는 예루살렘이다. 이어서 미가는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라고 선언을 한다.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 라는 말이 시편 61:6절에도 나온다. 시편 61:6절은 전쟁터에 나가고 있는 왕이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 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다. "당신" 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3인칭일 경우에만 존칭이고 2인칭일 때는 함부로 부르는 말이기에 한글 성경에서는 "주의 이름" 이라고 고쳐 번역한 것이다. 미가는 "여호와의 목소리가 그 도시를 향해 외치신다" 라고 말한 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다. 비슷하지만 형태가 다른 말이 잠언 1:7절과 9:10에도 나온다.
기도를 마친 뒤 "들으라 매로부터, 그것을 정하신 분께" 라고 외친다. NASB는 "들으라 족속아!" 라고 번역했다. 이는 서로 다른 필사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시를 말했다면 그 다음에는 유다 족속을 말하는 것이 보통 순서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필사본들이 존재할 때는 자연스럽게 말이 되는 것보다는 전혀 말이 안되는 "들으라 매로부터" 가 원본으로 보는 것이 사본학의 원칙이다. 말이 안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보고 말이 되도록 고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말이 되는 것을 말이 안되게 고치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매로부터 들으라" 라고 한다면 매를 맞고 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나서라도 깨달으라는 뜻이다.
10절은 예루살렘에 사는 유다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아직도 악인의 집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 악인의 보물과 함께 있는? 저주받을 작은 에바도?" 라는 뜻이다. 에바란 곡식을 재는 됫박 같은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줄 때 적게 되어 주고 나중에는 맞는 되로 많이 받고 이자까지 높게 받은 것이다. 이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질문하시는 내용이다.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 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없기에 그렇게 하는 자들을 책망하시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지배층들이 그렇게 속여서 백성들을 착취했기에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그렇게 악한 일을 하면서 자신들은 거룩한 자들이라고 백성들 앞에서 행세하는 것은 여호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12절은 예루살렘의 부자들은 폭력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거짓말을 말한다는 것이다. 10-11절을 상인들이 백성들을 속인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12절의 문맥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12절의 예루살렘의 부자들과 그 주민들은 모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Wiseman은 예루살렘의 부자들이란 말은 왕족과 군대의 최고 지도자들과 땅을 많이 가진 귀족들이라고 말한다(Wiseman, 216).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재산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매로 때리고 속인다는 것이다.
13절은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쳐서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귀족들이 가난한 백성들이 빚을 갚지 않는다고 쳐서 병들게 했기 때문에 그대로 하신다는 것이다. 병든다는 말은 매를 맞아서 중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저들은 뼈가 부숴지도록 때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들의 뼈가 부숴지도록 때리신다는 뜻이다.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라는 말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맞아서 뼈가 다 부숴질만큼 중상을 입은 것을 이제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된 도시로 비유한 것이다. 그것은 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죄 때문이다.
14절은 뱃속에 집어 넣은 재물이나 감추어 둔 재물이나 다 소용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때리셨기에 중상을 입은 이들은 잘 먹어서 회복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도 않고 항상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배불리 먹으면 힘이 나는 것인데 이들은 여전히 힘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나중에 잘 먹으려고 재물을 몰래 감추어 두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칼에 붙이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칼을 들이대고 다 빼앗아가게 하신다는 뜻이다.
15절은 그래서 아무것도 없게 된 이들은 곡식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나 아무것도 추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리브 열매로 기름을 짜려고 밟아도 그 기름으로 바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리브 오일은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뜨거운 사막 기후에서 몸에 발라 피부가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바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인근에서는 좋은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렵기에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신다. 그런데 마실 포도주 조차도 없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래 씨를 뿌리고 기름을 짜고 포도를 밟는 일은 가난한 백성들이 하던 일이고 이러한 지도자들은 하지 않던 일이다. 이들이 이렇게 낮은 신분으로 전락해서 육체 노동을 하게 되는데 그래도 얻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들의 노예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 장면이다. 이는 과거 이들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했던 것을 그대로 갚아 준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물이나 힘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온 저주를 받을 자이다. 그런 지위에 있지 않다고 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이 이득을 취한다면 역시 이런 저주를 받을 자들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자들은 언약의 짐승처럼 쪼개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행하든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