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1-8 하나님께서는 어떤 값진 제물로 드리는 제사보다 정의와 한결 같은 사랑을 근거로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행하길 원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의지하던 군대와 성벽과 점치는 것과 우상들을 모두 완전히 멸하시고 그것들을 공급한 이방 나라들까지도 완전히 멸하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그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따라서 그 백성들을 완전히 멸하신다고 하신 것은 실제로 멸하신다기 보다는 회개하고 돌아서게 하시려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1절은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로 시작한다.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신 뒤에 그 백성들을 모아 놓고 재판을 하는 장면이다. Smith도 산들과 작은 산들을 여호와의 재판의 증인들로 세운 것이라 했다(Smith, 119-20). Barker는 이러한 재판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재판이라고 했다(Barker, 108). 고대의 언약이 깨진다면 언약의 당사자 중 누가 언약을 깼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1절은 산들과 작은 산들을 불러 놓고 누가 언약을 깼는지 밝혀보자는 것이다. "일어나서" 라는 말은 변론을 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일어서서 네 변론을 시작해서 증인들인 산들과 작은 산들이 듣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들과 작은 산들은 단순히 의인법이나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동식물 뿐만 아니라 산과 바다 그 밖의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신학적 표현이다.
2절은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을 부르며 여호와의 기소문을 들으라고 말한다. Wiseman은 땅의 견고한 기초들이라는 말이 산을 말만 바꾸어 다르게 부르는 말로 본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들이기에 증인으로서 최고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한다(Wiseman, 211). 그러나 Barker는 땅의 견고한 기초란 바다 밑에 있는 산들의 기초를 말할 것이라 했다(Barker, 109). Smith도 땅의 기초라는 말이 땅을 떠받치는 기둥들이라고 했다(Smith, 120). 산들과 땅의 견고한 기초라는 말이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기에 땅 위로 솟아 오른 부분과 그 아래에 바다 밑바닥에 있는 산들의 기초를 증인들로 불러 세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피고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일어서서 변론할 준비가 되었고 또 증인들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기소문을 들을 준비가 딘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다투실 것이라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낭독하면 피고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변호할 것이다. 그러면 검사와 변호사가 논쟁을 하며 다투듯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서로 법정에서 다투게 된다는 것이다.
3절은 "내 백성들아!" 라고 부르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론할 기회를 주시는 장면이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로 괴롭게 했는지 말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계명 중에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어 지치도록 만든 것이 뭐가 있나 말해 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하셨다. 무거운 짐들은 거룩한 척 외식하는 자들이 지워준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본래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적이 없는 것이다.
4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구해내시고 값을 지불하고 속량하셨다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다고 했다. 4절은 3절에서 무거운 짐을 지워서 괴롭게 한적 있느냐는 말에 대한 답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워주기 보다는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받던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뜻이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그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신 것이다.
5절은 "내 백성아!" 라고 다정하게 부르시며 "모압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4절이 홍해를 건너게 해서 구원하신 것을 말한다면 5절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싯딤은 요단강 동쪽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고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 처음 멈춘 곳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6절은 여호와께서 기적을 통해 자신들을 구원하신 것을 깨달은 백성들이 무엇으로 여호와께 감사를 드릴지 질문한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라고 스스로 질문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라고 대답한 것이다.
7절은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라고 스스로 묻는다. 자신의 허물을 위해 자신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맏아들을 드릴까? 라고 스스로 질문을 하지만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형식적인 예배로는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리고 심지어는 맏아들까지 드린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8절은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다. 먼저 정의를 행한다는 말은 현명한 재판 기록을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뜻이다. 또 인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한없이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의와 인자는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강한 자들 편을 들어 주며 약한 자들은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반대로 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한 자들의 죄는 공정하게 재판하고 약한 자들의 실수는 한없이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 태도이다. 그런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겸손히 걷는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Barker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꼼꼼하게 살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Barker, 114). 하나님 말씀을 잘 안다며 자신들이 아는대로 행하는 것은 교만하게 행하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 말씀을 살피며 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귀한 물질을 드리며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큰 죄는 교만이다. 하나님 말씀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말씀으로 자신들은 거룩하다고 생각하며 함부로 남을 정죄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겸손은 항상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 자신을 비추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것이다.
나보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많이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위축되지 말고 그들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용서하는 한결 같은 사랑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가슴을 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