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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미가 › 5:1-4

Dawn Word

미가 5:1-4

뺨맞는 왕과 영원하신 그리스도

2020. 11. 19. · 안정섭 목사 · 미가 5장 강해 설교

미가 5:1-4 웅장한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통치자는 뺨을 맞을 것이고 그를 의지하는 우상 숭배자들은 수치를 당하겠지만 베들레헴 작은 마을로 오신 영원한 메시야를 의지하는 자들은 영원히 그분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살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딸 시온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받게 하신 것은 딸 시온을 멸하려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대적들을 완전히 짓밟게 하시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일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이 고난을 받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고난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으로 연결된다.

1절은 원어에서 "지금은" 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된다. 4:13절에서 대적을 치고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일은 먼 미래의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은 군대를 모으라, 군대의 딸아" 라고 말한다. 군대의 딸이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왜 예루살렘에게 군대를 모으라고 하는가? 그 이유가 바로 이어서 설명된다. 그 이유는 적들에게 포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으라" 라는 말의 해석이 엇갈린다. 대부분 영어 번역들과 한글 번역들은 "모으라" 라는 뜻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의 본래 의미는 "공격하다"라는 뜻인데 구약성경에서 대부분 자기 자신을 칼로 공격할 때 썼다. 신명기 14:1절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라는 말에서 "자기 몸을 베다" 라는 말이 바로 "모으라"고 번역한 말과 같은 말이다. 열왕기상 18:28절에서는 바알의 선지자들이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라는 말에서도 "자기 몸을 베다" 라는 뜻으로 썼다. 예레미야 16:6절과 41:5절과 47:5절에서도 "자기 몸을 베다" 라는 뜻으로 썼다.

오직 예레미야 5:7절에서만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라고 할 때 모이며 라는 뜻으로 썼다. 하지만 이 구절도 역시 공격한다는 말을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계속해서 창기의 집이 공격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몰려와 창기의 집을 둘러싸고 있기에 창기의 집이 마치 포위된 채 공격을 당하는 성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Longman은 신명기 14:1절을 들어 자신을 칼로 베는 행위는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 널리 퍼져있던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금지된 행위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명령은 비꼬는 투로 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Longman, 655-56). Smith-Christopher도 역시 신명기 14:1절과 열왕기상 18:28절을 근거로 이 구절은 의심할 여지 없이 빈정대는 투로 자신을 베라는 뜻이라고 말한다(Smith-Christopher, 162). Allen도 역시 자신을 베는 것은 장례식에서 행하던 풍습이라고 말한다(Allen, 341).

이어지는 문맥도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뺨을 칠 것이라 했다. 그렇기에 이 말은 우상을 숭배하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실 것이기에 이제 이방인들처럼 너희들도 너희 살을 베며 슬퍼해 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열왕기상 18:27절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는 투로 말하는 것과도 같다. 우상숭배하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한번 너희 살을 베며 너희가 찾는 신들에게 구해달라고 해 보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치셔서 모두 흩으시겠지만 4:6-8절에 나온 것처럼 그 중에 남은 자들을 모아 시온에서 영원히 다스리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1절 끝부분에 나온 뺨을 맞는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모습은 2절에 나오는 영원한 통치자인 메시야의 모습과 대조가 된다. 영원한 통치자인 메시야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온다고 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5마일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웅장한 예루살렘 성과 작은 시골마을이 대조된다. 웅장한 예루살렘 성의 왕궁에 있는 왕은 뺨을 맞고 있지만 작은 시골마을인 베들레헴에서 나올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리실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유다 족속 중에서 아주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근본은 오래되었고 옛날 부터라고 말한다. 개역개정은 "영원" 이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태초" 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의 의미는 "옛날" 이라는 뜻이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둘 다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다. KJV는 "everlasting" 이라고 번역했지만 ESV와 NIV는 그 문자적 의미 그대로 "옛날부터" 라고 번역했다. 메시야는 아주 작고 초라한 시골 마을에서 나올 것이지만 그분은 아주 오랜 옛날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 썼다(요 1:1; 골 1:17; 계 1:8). Waltke도 창세 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뜻이라며 "everlasting"이 적절한 번역이라고 했다. Fausset도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뜻으로 보았다(Fausset, 600). 작은 마을 베들레헴과 아주 긴 시간인 까마득한 옛날이 대조되는 것으로 볼 때 "옛날" 이라는 의미는 "영원" 또는 "태초" 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왕궁에 있는 왕이 구원자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런 왕이 뺨을 맞게 하시고 반대로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초라한 시골 마을에서 메시야가 나시는데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3절은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 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라고 했다. 새번역처럼 주님께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두시겠다는 뜻이다. 그 뒤에 그의 형제 가운데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온다고 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모든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만이 돌아온다고 한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선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양떼를 모으듯 모아오시는 것이다.

4절은 그가 서 계실 것이고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여 그의 양 떼를 돌보신다고 했다. 메시야가 돌아온 양 떼들 가운데 서셔서 돌보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의 위엄을 가지고 서서 돌보시니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 대조되는 도시는 딸 군대로 표현한 예루살렘과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이다. 대조되는 왕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왕이 뺨을 맞는 장면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태초부터 계시던 메시야이다. 눈에 보이는 웅장함과 눈에 보이는 위대한 왕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칼로 자신을 베며 울부짖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초라한 베들레헴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을 의지하며 산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게 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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