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4:11-13 딸 시온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받게 하신 것은 딸 시온을 멸하려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대적들을 완전히 짓밟게 하시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눈에 보이는 가짜 왕이 사라졌다고 울지 말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고통을 받고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1절은 대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치려고 모여서 하는 말이다. 새번역에서 "시온은 망해야 한다" 라는 말은 본래 "시온은 더럽혀져야 한다" 라는 뜻이다. 예레미야 3:2절은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이 말을 간음으로 더럽혀진 여인을 뜻하는 말로 쓴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예레미야 3:9절은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땅을 더럽혔거늘" 이라고 한 것을 보아도 우상숭배로 더럽힌 것을 뜻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온이 더럽게 되는 것은 성전을 파괴하고 거름을 뿌린다기 보다는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그 지도자들이 이방 사람들처럼 우상숭배를 하게 하자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인으로 비유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꼬여서 행음을 하여 더럽게 하고는 그렇게 더러워진 여인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새번역은 폐허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했지만 진정한 파괴는 성전의 파괴가 아니라 그 지도자들의 영적 타락이다.
12절은 그러나 저들은 여호와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들은 여호와의 계획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시온에 모으신 것은 시온을 짓밟게 해서 더럽혀지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으신 것은 마치 타작 마당에 곡식 단을 모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려고 모으셨다는 것이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소가 끄는 타작 썰매로 대적들로 비유된 곡식단들을 깔아 뭉갤 것이다.
13절은 딸 시온을 타작 썰매를 끄는 소로 비유했다. 원어에서는 먼저 일어나서 짓밟으라고 했다. 앉아있던 소에게 일어나서 타작 썰매를 끌라는 뜻이다. 뿔을 무쇠같게 한다고 했다.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그 발굽을 놋쇠같게 한다고 했다. 네가 많은 백성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제 타작 마당에서 곡식 단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그림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거두는 그림으로 바뀐다. 그렇게 대적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뒤 얻은 탈취물들은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고 얻은 재물은 온 땅의 주인께 드리라는 것이다. 여호와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주인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모든 공은 여호와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초점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완전히 망할 것 같은 위기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위기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만나는 위기는 세속화의 위기이다. 세상과 짝하여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세상의 유혹에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그러한 유혹들을 짓밟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초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리하게 하셨을 때 모든 전리품과 재물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에서 벗어나 모든 일이 잘 해결된 것은 우리의 공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 돌려야 할 공을 우리 자신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