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4:9-10 눈에 보이는 가짜 왕이 사라졌다고 울지 말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들을 위해 울라.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남은 자들을 모아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고 왕이 되셔서 영원히 다스리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런데 왜 우느냐는 말로 연결이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이 되시는데 어째서 왕이 없어졌다고 우는지 책망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9절은 "지금 어째서 그렇게 소리를 높여서 우느냐?" 라고 묻는다. 7절에서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라고 하셨는데 지금 어째서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왕이 없어졌다고 모사가 죽었다고 그렇게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고 말한다. 모사는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게 기쁜 소식을 들었다면 환호하며 기뻐하며 참고 기다렸어야 했다. 히브리서 11:23-28절에서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소망하며 기쁨으로 인내했어야 하는 것이다.
저들은 진정한 왕이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왕이 없어진 것만 슬퍼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모사가 죽었다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왕이 없어진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다윗 왕가를 통해 메시야가 오신다고 했는데 그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ei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이 왕을 잃은 것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영광스러운 소망은 그 보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왕은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난 대리인이었고 그 왕의 제거는 하나님의 진노의 사인이었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약속된 구원의 모든 축복이 취소된 것이었기 때문이다(Keil, 1:464-65).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망했다. 남왕국 유다는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나중에 멸망했다. 여호야김 왕은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갔고 시드기야는 눈이 뽑힌 채 역시 포로로 잡혀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자신들을 완전히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10절은 원어에서 "몸부림치며 신음하라, 오 시온의 딸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그렇게 몸부림치며 신음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너희는 이 도성을 떠나서 빈들에 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바빌론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미가의 예언대로 나중에 실제 그렇게 포로로 잡혀갔을 때 저들은 이제 완전히 망했다고 하나님은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가는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신다고 말한다. 값을 지불하고 해방시키셔서 완전히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가 왕이다. 세가지인 것 같지만 결국 재물 하나로 압축된다. 다른 것들은 돈이 함께 따라오기에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재물이 많은 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사인이라고 생각한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미가는 세상을 지배하는 그러한 권세는 왕도 아니고 축복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왕이 사라진 것이 축복이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 다 잃고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고서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