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1-5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탐욕에 이끌려 가난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노예로 삼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사로잡혀 노예로 끌려가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되 의지할 곳도 피할 곳도 전혀 없게 하시고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다 잃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백성들을 착취하던 이스라엘의 지배층들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망하게 하신다는 저주의 예언이 이어진다.
1절은 원어에서 "호이!" 라는 의성어로 시작한다. 이는 "화 있을진저!" 라는 말로 번역된 말이다. 본래 이 말은 장례식에서 슬픔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열왕기상 13:30절에서 "오호라 나의 형제여!" 라는 말에서 "오호라!" 라는 말이 "호이!" 라는 말이다. 누가 죽었길래 미가는 그렇게 곡을 하며 슬퍼할까? 바로 잠자리에서 악한 일을 계획하고 날이 밝으면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 손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손에 힘이 있다는 말은 이들이 권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는 주먹이나 팔 힘이 세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부유하고 권세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이제 모두 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미가는 그들을 향해 "호이!" 하고 슬퍼하며 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자리에서 꾸민 일이 무엇인지 2절에 나온다. 개역은 밭들을 탐하고 집들을 탐하여 취한다고 했는데 원어는 밭들은 눈독을 들이며 욕심을 낸다는 뜻이고 집들은 강제로 빼앗는다는 뜻이다. 창세기 21:25절에서 아비멜렉이 강제로 샘을 빼앗았다고 아브라함이 불평을 하는 내용에서도 나온다. 밭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기에 쉽게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욕심을 내며 계획을 꾸민다. 사람들을 속이고 법정의 힘을 빌려 차지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집들은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았다는 구실로 강제로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집 사람들과 그 산업을 강탈한다고 했다. 강탈한다는 말은 억압하거나 쥐어짠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일 먼저 욕심을 내고 그 다음에는 강제로 빼앗은 뒤 마지막으로는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과 재산을 쥐어짜내어 그 유익을 취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종으로 만들어 부려먹고 그들의 포도원이나 농토에서 나오는 것들은 자신들이 다 가져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번역은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것으로 만든다" 고 번역한 것이다.
3절은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라는 말로 이런 악한 자들에게 경고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도 이런 족속들에게 악을 계획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족속이란 2:1-2절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빼앗는 족속들이다. 계획한다는 말은 2:1절의 "죄를 꾀한다"에서 "꾀한다" 는 말과 같은 말이다. 악한 족속들이 악한 일을 계획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 악한 족속들에게 악한 일을 계획하신다는 것이다.
"너희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악한 족속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워 주셨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멍에를 지우고 부려먹은 이런 족속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그들에게도 멍에를 지우고 고통 받게 하시는데 스스로 그 멍에를 벗을 수 없다는 뜻이다.
또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전에는 고개를 높이 들고 배를 앞으로 내밀며 뒷짐지고 교만하게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처럼 목에 멍에를 메었기에 걸을 때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재앙의 때이기 때문이다. Fausset과 Jamieson은 재앙의 때라는 말이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Fausset, 591; Jamieson, 689). 힘없는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에게 멍에를 메워 노예로 삼았던 이스라엘의 지배층들은 이제 끌려가서 평생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4절은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너희를 두고서 이러한 풍자시를 지어서 읊는다고 말한다. 풍자시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마샬" 인데 잠언이나 비유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이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면 조롱하는 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잠언처럼 곁에 두고 늘 기억하는 것처럼 그렇게 조롱하는 노래를 기억하며 계속 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조롱할 일만은 아니다. 이는 악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만 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슬픔에 사무친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다" 라고 한 것이다. 온전히 망하게 되었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망하고 망하게 되었다" 라고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해서 말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 백성의 땅들을 옮겨서 내게서 떠나게 하셨고 그것을 반역자들의 몫으로 나누어주셨다고 했다. 반역자들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는 뜻이다.
5절의 "여호와의 회중에서 " 라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모든 백성들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는 제비를 뽑고 줄을 띄어 땅을 나눌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그 땅을 정복할 때 제비를 뽑고 줄을 띄워 땅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이 그 땅을 정복하고 제비를 뽑은 뒤 줄을 띄워 측량을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부유하고 권력이 있던 자들은 법의 힘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차지하고 그들을 종으로 삼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곡식이나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부유하고 권력이 있던 자들의 죄는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지 않은 것이다. 고대에 빚은 대부분 먹을 것이 없어 식량을 꾸는 것이다. 이 경우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은 가난한 자들은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행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법적 절차에 따라 가난한 자들의 것을 빼앗은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역시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절을 잘못 적용하여 오늘날 이자를 받으면 안된다고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만약 오늘날도 먹을 것이 없어 돈을 빌려간 사람이 있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자도 받지 말고 가능하면 원금도 탕감해 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을 사거나 주식 같은 것에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려가서 이익을 취하고는 성경에 따라 이자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문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죄란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죄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인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사랑하는 "헤세드"가 없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이렇게 심판한다고 하신 것도 법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푸시다가도 무서운 공의의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다. 공의와 한결같은 사랑은 양날의 검과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어긴 자들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기 보다는 죄인으로 규정하여 유대교에서 내쫓았다. 공동체 전체가 신앙의 공동체인 경우 그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쫓겨난 자들을 접촉하기만 해도 부정해진다고 했기에 모두가 완전히 관계를 끊었었다.
마태복음 9:3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런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위선적인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경고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을 죄를 지으면서 항상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 기준은 우리 예수님이시다. 귀가 막히고 눈이 어두워 하나님 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몰라서 죄를 지을 때는 우리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한없이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고도 죄를 범하는 경우는 공의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29절에서 그 형벌이 얼마나 무거울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그 형벌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0:30절에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말과 삶으로 전하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