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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미가 › 1:10-16

Dawn Word

미가 1:10-16

의지할 곳도 피할 곳도 없게 하시는 하나님

2020. 11. 6. · 안정섭 목사 · 미가 1장 강해 설교

미가 1:8-16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되 의지할 곳도 피할 곳도 전혀 없게 하시고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다 잃게 하신다.

미가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길을 벗어난 음란한 창녀와 같은 사마리아 지도자들과 우상숭배하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라 했다. 이제 그렇게 완전히 멸망할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해 애곡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의지할 곳도 피할 곳도 없게 하신다는 것이다.

개역개정 8절은 이것 때문에 내가 애통하고 통곡한다고 했다. 새번역은 슬퍼하며 통곡한다고 했다. 애통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은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와는 달리 통곡한다는 말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슬퍼하는 모습이다. 이것이란 1:4-7절에 나온 여호와의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완전히 무너뜨려 물처럼 쏟아지게 하실 것이고 또 앞으로 예루살렘도 그리 하실 것이기에 가슴을 치며 슬퍼하다가 큰 소리로 통곡을 하는 것이다.

이어서 개역은 벌거벗은 몸으로 다닌다고 했는데 원어는 새번역처럼 신발을 벗고 옷도 벗고 걸어 다닌다는 뜻이다. 앞에서는 한 자리에 앉아서 가슴을 치며 슬퍼하고 큰 소리로 통곡하며 슬퍼한 장면이라면 이제 그 슬픔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는 장면이다. 맨발에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은 슬픔의 표현이다. 샌들을 벗고 겉옷과 속옷을 벗으면 생식기를 둘러싼 천만 남게 된다.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이 있는 길을 걸어 다니는 장면이다. 이제 미가는 그 슬퍼하는 장면을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들개같이 구슬피 울며 타조처럼 목놓아 운다고 했으니 이제 미가는 맨발에 생식기만 천으로 감싼 채 가슴을 치며 큰 소리로 울며 걸어 다니는 것이다.

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렇게 통곡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그 상처는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상처란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된다. 그러나 사마리아가 받은 상처는 치료되지 않는 상처이다. 또 그 상처가 유다에까지도 온다고 했다. 유다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지역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내 백성의 성문을 친다고 했다. 성문이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의 문이기에 도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예루살렘이라고 한 것이다. 사마리아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전염병처럼 유다에 퍼지고 이어서 예루살렘의 성문도 치는 장면이다. 어쩌면 전염병보다는 사마리아를 친 토네이도가 유다를 치고 예루살렘까지 치는 장면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다.

8절에서 미가는 그렇게 통곡을 하며 맨발에 벗은 몸으로 다녔는데 10절에서는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말한다. 또 울지도 말라고 말한다. 가드는 유다의 경계 가까이에 있는 블레셋의 도시들 중 하나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소식이 가드에 알려지면 그들은 기뻐 날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도 울지도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서 뒹굴라는 것이다. 베들레아브라는 지명은 티끌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웃 블레셋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소리내어 울지 말고 대신에 티끌에 뒹굴면서 그 슬픔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11절에서 사빌에 사는 사람들에게 벌거벗은 몸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며 잡혀가라고 했다. 히브리어에서 사빌이란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우아하게 사는 사람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아름답지 못하게 잡혀간다는 뜻이다. 또 사아난에 사는 사람들은 그 성읍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성읍에서 나온다는 말을 NASB는 탈출한다는 말로 번역했다. 앗시리아의 공격을 피해 그 성읍에서 나와 이웃 도시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그 성읍에서 나오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의지하던 벧에셀이 통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멸망은 사아난 만이 아니라 유다의 도시들 모두에게 임한 것이기에 어느 곳으로 탈출할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하러 갈 수도 없는 것이다.

12절도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탈출하여 도움을 청하러 갈 수 없는가 하면이라는 뜻이다. 마롯에 사는 사람들도 근심 중에 복을 바란다고 했다. 원어는 춤을 추거나 몸을 비틀고 흔든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몸을 비틀고 흔든다는 것이다. 마롯에 사는 사람들도 역시 고통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몸을 비틀고 있기에 결국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앙이 여호와로부터 예루살렘 성문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웃 도시 뿐 아니라 가장 큰 도시인 예루살렘에도 재앙이 임했기에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13절은 "라기스에 사는 사람들아 너희는 군마에 병거를 매어라" 라고 말한다. 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쪽으로 약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이다. 역대하 11:9절에 보면 르호보암이 방어하기 위해 성을 건축한 도시 중 하나이다. 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쪽에서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은 도시였다. 그러나 적과 싸우기 위해 군마에 병거를 매라는 뜻이 아니다. 병거를 타고 정신없이 도망가기 위해 병거를 군마에 매라는 것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라 했다. 라기스가 먼저 우상숭배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라기스가 여로보암을 흉내내어 거짓 신들을 섬기기 시작해서 예루살렘까지 퍼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너희 안에서 이스라엘의 허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허물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이유를 조사해보니 그 범인은 라기스였다는 뜻이다.

14절에서 모레셋 가드에게 작별의 선물을 주라고 했다. "모레셋" 이란 유산이나 소유를 뜻하는 말이다. 유산이나 소유를 뜻하는 모레셋에게 유산이나 소유를 선물로 주라는 뜻이다. Barker는 이 말이 결혼을 해서 떠나는 딸에게 작별의 선물을 주라는 뜻으로 해석했다(Barker, 60). 부모의 집을 아주 떠나는 딸에게 귀한 소유를 나누어 줌으로 작별하라는 뜻이다. 이제 모레셋은 앗시리아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유다는 모레셋을 앗시리아에게 넘겨주게 되었기에 작별의 선물을 주라는 것이다.

또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일 것이라고 말한다. 악십이란 속인다는 뜻이다. 속이는 도시가 이스라엘 왕들을 속인다는 언어유희이다. 예레미야 15:18절에서도 "속이는 시내" 라는 말에서 나온다. 목이 말라서 시냇가에 갔는데 물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왕들이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받으러 갔는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악십은 보기에는 물이 흐르는 시내 같았지만 가서 물을 마시려 보니 물이 말라버린 시내와도 같았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장차 마레사에 사는 사람들을 소유할 주인을 데려오신다는 것이다. 마래사 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정복자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기에 역시 언어 유희이다. 하나님께서 정복자를 데려오셔서 너희 정복자를 정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아둘람은 사무엘상 22:1절에서 다윗이 도망한 굴이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의 영광이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아둘람에 있는 동굴에까지 도망한다는 뜻이다. 믿고 의지하던 이스라엘의 영광이 그렇게 아둘람 동굴로 도망할 것이기에 이제 믿고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16절은 네 스스로 네 머리를 깎아 독수리처럼 대머리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머리를 대머리처럼 깎는 것은 슬픔의 표시이다. 독수리는 머리와 목에 털이 없는 흰목 대머리수리(Griffon Vulture)를 가리키는 말이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머리를 깎아 대머리가 되게 하라는가 하면 네가 기뻐하는 자식들을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로잡혀 너희 품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사로잡혀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도시들은 그 어느 곳에도 피할 곳도 의지할 곳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모두 멸망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숨을 동굴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다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자신의 탐욕의 길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지할 모든 것들을 다 빼앗으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빼앗으신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의 경고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피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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