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6:11-20 랍사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앗시리아 왕 산헤립을 의지하라고 연설을 했다.
하: 세상의 속임수와 협박에 넘어가지 않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보낸 랍사게는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고 하나님까지 자기 편이라며 조롱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랍사게는 히스기야 왕도 너희가 믿는 하나님도 믿지 말고 오직 앗시리아 왕만 믿고 따라오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11절에서 히스기야왕이 보낸 외교사절 세 사람이 랍사게에게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시리아 말로 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나 12절에서 랍사게는 이를 거절하고 백성들에게 "자기가 눈 대변을 먹고 자기가 본 소변을 마실 백성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라고 말했다. 이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굶어죽게 되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을 줘서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전략이다.
13-17절은 랍사게가 유다 말로 백성들에게 한 연설이다. 14절은 "너희는 위대한 왕이신 앗시리아 임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라는 말은 마치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과도 같다. 앗시리아 임금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고 앗시리아 임금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다. 랍사게는 산헤립이라는 거짓 신의 선지자가 되었다.
15절에서 랍사게는 주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히스기야가 말해도 듣지 말라는 것이다. 16절에서 또 "앗시리아의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라고 하며 또 다시 산헤립의 선지자 행세를 한다. "나와 평화조약을 맺고" 라는 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이제 앗시리아 왕과 언약을 맺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자가 아니고 앗시리아 왕이 구원자이니 아무런 도움도 못주는 하나님을 버리고 진짜 너희를 지켜줄 앗시리아 왕에게 오라는 것이다.
17절은 그 언약의 내용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던 내용과도 같다. 이는 앗시리아가 유다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힘을 못쓰게 하려는 정책 위에 설탕을 입힌 것이다. 마치 쓰디 쓴 약에 단 것을 입힌 알약과도 같다.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있지만 사실은 앗시리아가 정복한 나라들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혼합해 놓는 정책이다.
18-20절은 하나님보다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18절에서 랍사게는 주님이 구원하실 것이라고 히스기야가 꾀어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신들 가운데 어느 신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19절의 하맛과 아르밧은 시리아의 중심도시들이다. 스발와임은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지명들은 유다
주변의 나라들인데 앗시리아가 점령한 지역이다. 그런 모든 나라들의 신들보다 앗시리아 왕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20절은 어떤 신들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땅을 구한 일이 있기에 너희의 주 하나님이 나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랍사게는 앗시리아 왕을 모든 신들 뿐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강한 존재라고 말하며 높이고 있다. 그러나 랍사게는 실수를 한 것이다. 랍사게는 하나님도 다른 나라의 우상들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랍사게는 온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이러한 랍사게의 말은 30-35장에서 계속 반복된 풀꽃 왕관 같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의 패러디이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산헤립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자기 대변과 소변을 먹을 것이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수로까지 막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한 랍사게는 진짜로 그렇게 하게 할 수 있다. 풀꽃왕관을 쓴 세상의 힘있는 자들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세상을 의지하도록 속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대변과 소변을 먹다가 다 죽을 지라도 세상의 힘을 의지하면 안된다. 어떠한 핍박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