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6:1-3 아모스는 스스로 교만해져있는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경고하며 슬퍼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면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와 절기를 혐오하시면서 받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사로잡혀 가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교만한 유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대해 슬퍼하는 내용이다.
1절은 "화 있을진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찔리거나 다쳤을 때 내지르는 비명을 의미한다. 이 말은 열왕기상 13:30절에서 "오호라 형제여" 할 때처럼 장례식의 애가에 쓰인다(BDB Lexicon, 2364). 아모스는 이제 사망선고를 받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아파하며 그들이 멸망한 것을 슬퍼하고 있다. 아모스의 이러한 비명은 스스로 교만하며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유다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가 된다.
먼저 시온에서 안전하다며 편안히 사는 자들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뜻한다. 특히 시온은 예루살렘 성전 산의 이름이기에 성전에 거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의미할 것이다. Smith는 이러한 태도가 영적으로 탁월하다는 견해로 인해 부풀려졌을 것이라고 말한다(Smith, 117).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보호막으로 삼아 그 안에서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교만한 태도로 편안히 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사마리아 산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에 사는 정치 지도자들을 뜻한다. 사마리아는 지형 자체가 천연의 요새이다. Smith는 그들이 믿던 것은 천연의 요새인 사마리아성과 그들의 정치적 군사적인 탁월함이라고 했다(Ibid.). 남쪽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는 자신들의 영적 탁월성을 의지하던 종교 지도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사마리아 산에는 자신들의 요새와 정치적 군사적 탁월성을 의지하던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을 싸잡아서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이라고 부른다. 개역개정은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 이라고 번역했지만 나라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모든 나라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나라들 중에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처럼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귀족들이라는 말은 본래 찌른다는 뜻이다. 뾰족한 것으로 한 지점을 찌를 때 쓰는 말인데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이스라엘 집들이 그들을 따른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지도자로 삼아 따라오고 있기에 그들이 잘못가면 모두 다 망한다는 뜻이다.
2절에서 아모스는 이 두 종류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갈레로 건너가서 살펴보라고 말한다. 또 거기에서 다시 큰 성읍 하맛으로 가보라고 말한다. Smith 와 Stuart 는 갈레와 하맛이 이스라엘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리아의 도시들이라 했다(Ibid., Stuart, 359). 이는 이스라엘의 동쪽에 있는 도시들이다. 그 다음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가드로 내려가 보라고 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서쪽 해변에 있는 도시이다. 가까운 나라의 도시들을 가서 보고 교훈을 받으라는 것이다.
아모스는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더 나으냐? 그들의 영토가 너희 것보다 넓으냐?"라고 묻는다. 이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자신들이 최고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우러러보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때문인데도 자신들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임금님을 태운 나귀가 성을 한 바퀴 돌 때 모두가 절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자 스스로 우쭐해서 임금님을 내동댕이 치던 나귀와도 같다.
3절은 이들이 재앙의 날은 멀리 밀쳐버리면서도 포악한 자리는 가까이 끌어 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2절에서 말한 이웃 도시들도 과거에는 독립된 도시들이었는데 망한 것을 보고 배워야 하는데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멀리 있다고 마음 속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악한 강한 나라들의 통치자들의 자리는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 권력과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 뜻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큰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들의 존경을 받으며 스스로 교만에 빠져있는 목회자들도 많다. 권력과 재물이 없는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큰 교회 목회자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처럼 자신들은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존귀하게 된 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며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교만하면 안된다. 아모스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예배만 드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니 안전하다고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모스가 말하는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물같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웃들에게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