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10-1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말을 싫어하고 혐오하면서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면 지혜자들도 입을 다물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말씀에서 정의를 불의로 바꾸는 인간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계절과 밤낮과 우기와 건기가 일정한 것처럼 항상 정의로우시다고 했다. 이제 정의를 불의로 바꾼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항상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불의로 바꾸는 자들은 분명히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10절은 성문 앞에서 재판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성문 앞 넓은 광장은 재판하는 장소였기에 새번역은 법정이라고 의역을 한 것이다.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는 재판관을 가리킨다. 그가 올바른 재판을 하면 미워한다는 뜻이다. 재판관은 힘있는 자이기에 마음 속으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정직히 말하는 자는 대부분은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증인으로 해석한다(Motyer, 801; Smith, 102; Stuart, 348; Sunukjian, 1440). 법정에서 정직하게 증언하는 자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싫어한다는 것은 미워하는 것보다 강한 말이다. 이는 혐오한다는 뜻으로 그 싫어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직접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재판관이 올바른 재판을 하면 미워하고 증인이 정직하게 증언하면 혐오하는 사람은 부자이고 뇌물을 준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관과 증인들은 올바르게 하고 있는데 악한 부자들이 뇌물을 주고 올바른 재판과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Fausset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는 단순히 재판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선지자가 성문 앞에서 책망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그 근거로 열왕기상 22:8절에서 여호사밧이 흉한 일만 예언하는 예언자를 미워한다는 말과 예레미야 37:23절에서 여후디가 낭독하는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에 태우는 장면을 근거로 그렇게 말한다(Fausset, 544). Fausset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와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선지자 자신으로 보는 것이다. 개역에서 "무리" 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는 없는 말이다. 미워한다는 말과 싫어한다는 말 자체가 그들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무리라는 말은 백성들이 재판관의 올바른 재판을 싫어한다는 것처럼 이해하기 쉽기에 잘못된 번역이다. 무리는 그들이라고 바꾸어야 한다.
11-12절은 권력자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저주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문맥으로 본다면 Fausset의 말처럼 선지자의 책망을 미워하고 선지자의 진실한 증언을 혐오한다는 말이 문맥에 맞는다.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관은 왕이나 그 성읍을 다스리던 자들이 맡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1-12절은 백성들을 다스리던 자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관과 증인들은 바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 맞지 않는다.
11절은 먼저 너희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한다고 했다. 가난한 자들은 자기 땅이 없는 소작인들이다. 이들은 땅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고 나면 자신들 먹을 것도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짓밟고 그들에게 곡물세를 강제로 징수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성의 지배자들의 죄악이다. 그 성의 지배자가 곧 재판관이기에 10절에서 올바른 재판관을 말하고 11절에서는 그들의 죄악을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게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다듬은 돌로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이는 왕궁과 같은 호화스러운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일반인들은 햇볕으로 말린 흙벽돌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집에서 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는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12절은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안다고 했다. 허물이란 본래 왕에게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뜻하기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반역하여 자기들 탐욕대로 백성들을 다스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죄란 목표물을 벗어난다는 뜻이기에 하나님 뜻에 어긋난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백성들을 다스리라 했는데 저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를 한 것이다.
의인을 학대한다는 말은 억누른다는 뜻이다. 활동을 제한하거나 꼼짝도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뇌물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한다고 했다. 이는 부자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뇌물을 준 사람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는 뜻이다. 만약 10절이 재판관을 뜻한다면 12절의 이러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가 된다.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들의 죄를 지적하고 저주한 것을 볼 때 10절은 선지자가 책망할 때 미워하고 선지자가 정직하게 말하면 혐오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13절은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한다고 했다. 악한 때이기 때문이다. 지혜자란 통찰력이나 이해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가지고 조언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악한 지도자들이 듣지 않을 것이기에 입을 다문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심판의 말씀까지 입을 다문다는 뜻은 아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이 조언을 해줘도 듣지 않을 것이기에 이제 남은 것은 심판을 받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모스는 10절에서도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고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힘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하나님께 반역을 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이 부귀영화를 누린 죄를 지적한 것이다. 이들의 가장 큰 죄는 백성들을 착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듣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지혜자들은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모두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힘있는 자들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데 있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도 아니고 재판관도 아니기에 이 말씀과 상관이 없다고 하면 안된다. 성경은 항상 그 말씀을 전달하는 껍질이 아닌 그 알맹이를 찾아서 오늘날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 10절은 듣기 싫어한다는 말로 시작하고 13절은 지혜자들이 입을 다물었다는 말로 끝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자신들 생각대로 산다면 하나님 뜻에 어긋난 삶을 사는 것이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이다. 자신이 듣기에 좋으면 은혜 받았다며 듣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면 무시하고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어긋난 삶이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이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지혜자들이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 때는 악한 때이고 심판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