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7-9 정의를 불의로 바꾸는 인간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계절과 밤낮과 우기와 건기가 일정한 것처럼 항상 정의로우시다.
이전 말씀은 세상 영광과 쾌락을 찾다가 방문하고 나중에는 아예 이사하려고 하면 완전히 망할 것이니 돌아서서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살게 된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기 위해 악한 인간들과 비교해서 말하며 하나님을 찾으라고 경고하는 내용이다.
7절은 8절에 딸려 있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비교하기 위해 악한 인간들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먼저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는 자들이라 했다. 쓴 쑥은 불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의로운 재판을 하면 억울한 자들이 달콤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으로 억울한 고통을 당하게 되면 쓰디 쓴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악한 지도자들이 뇌물을 받고 힘 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5:22-24절을 보면 값진 제물들을 바치는 것보다 공의와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달콤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불의가 판을 치게 만든 것이다.
8절은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한다. 묘성이란 황소자리 라고 불리우는 별자리이다. 삼성이란 겨울철 남쪽하늘에 보이는 세쌍둥이 별들을 가운데 두고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오리온이라는 별자리를 뜻한다. 오리온의 세쌍둥이 별을 따라 직선으로 따라가면 알데바란이라는 가장 밝은 1등성을 만난다. 알데바란이 황소자리의 으뜸가는 별이다. 그 뒤에 여러 별들의 무리가 바로 묘성이다. Sunukjian은 해뜨기 직전에 뜨는 묘성(Pleiades)는 봄이 온다는 신호이고 해가 진 후 뜨는 삼성(Orion)은 겨울을 알리는 전령이라고 했다(Sunukjian, 1439).
그렇다면 묘성과 삼성을 지으신 분이란 계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는 분은 밤과 낮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밤과 낮이 하루의 변화라면 겨울과 봄은 1년의 변화이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또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라는 말은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구름을 만드시고 그 구름으로 땅 위에 비가 내리게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주관하신다는 뜻이다.
계절의 변화와 밤낮의 변화는 항상 일정하다. 비가 내리는 계절도 이스라엘에서는 늦가을에서 이름 봄까지 겨울철에 내리는 것도 항상 일정하다. 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항상 정의와 공의로 일정하게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는 달콤한 하나님의 정의를 쓰디쓴 불의로 바꾼 인간들과는 완전히 대조가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원어에는 찾으라는 말이 없다. 단지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불의한 인간들과 비교해서 말한 것이다. 이는 물론 여호와를 찾으라는 뜻이다.
9절도 8절에 딸려있는 부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강한 자에게 번개같이 갑자기 패망이 닥치게 하신다는 것이다. 패망이 산성에 미친다는 것은 강한 자들이 높고 튼튼하게 쌓은 요새도 완전히 무너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는 자들은 뇌물을 받고 악한 자들을 풀어주고 죄 없는 자들을 처벌하지만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기에 악한 자들이 아무리 많은 희생제물을 바친다 해도 단숨에 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성을 통해 비가오는 겨울을 알리시고 묘성을 통해 비가 안오는 봄이 온다는 것도 항상 일정하게 알리시는 분이시다. 밤과 낮도 항상 일정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삼성을 통해 바닷물이 비가 되어 땅을 적시는 것을 알리시는 분이시고 묘성을 통해 이제 비가 그치고 곡식이 여무는 계절이 온다는 것도 알리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바로 정의 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란 원칙에 따라 항상 똑같이 행하는 것이 정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정의를 고무줄 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혈연이나 지연과 학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도 역시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꾼 자들이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권력과 재물이 있는 자들을 감싸고 돌았고 가진 것이 없어 희생제물을 드리지 못하는 자들은 율법을 어긴 죄인으로 몰아 유대교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당시 유대교 밖으로 쫓아낸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심한 형벌이었고 그런 사람들은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산상수훈이라 불리우는 마태복음 5-7장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세상에 나가서는 불의를 밥 먹듯 하면서도 주일이면 차려 입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헌금 많이 드리면 의로운 사람으로 행세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헌금이 아니라 정의이다. 정의란 잘못한 사람에게 너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지적절은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을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들의 잘못은 알면서도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란 지적질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 힘든 사람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감싸주는 것이다.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그런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이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면 힘있는 불의한 자들에게 핍박을 당한다. 그럴지라도 그런 자들의 핍박에 견디며 불쌍히 여길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정의이다. 정의란 하나님의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원수같이 미운 사람들에게도 항상 참으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이다. 그것도 묘성과 삼성이 계절을 알리고 밤과 낮이 날이 바뀌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항상 일정하게 행해야 하는 것이다. 아모스가 외치는 정의는 결국 호세아가 외치는 한결같은 사랑인 것이다. 참고 참으시는 그 사랑이 방향이 바뀌면 하나님의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정의가 교회 안에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