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4-6 세상 영광과 쾌락을 찾다가 방문하고 나중에는 아예 이사하려고 하면 완전히 망할 것이니 돌아서서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살게 된다.
이전 말씀에서 아모스는 젊고 힘이 넘치는 아름다운 처녀 같은 이스라엘이 갑자기 비명에 횡사했다며 장송곡을 불러주었다. 그러나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는 충격요법이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를 찾으면 산다는 말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4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연결된다. 십 분의 일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에 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 라는 말씀이다. Smith는 5:14절에서 "너희는 살려면 선을 찾고 악을 찾지 말라" 는 말을 근거로 찾으라는 말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공의를 찾으라는 뜻이라고 말한다(Smith, 99).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다른 신들을 찾으며 탐욕을 따라 행하는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그동안 행하던 길에서 돌아서야 하기에 회개를 뜻한다. 이제라도 돌아서면 다 망하게 되는 중에서도 살아남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하고 욕하고 흉을 보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생각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수 같은 이웃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심판의 불 가운데서라도 건져 내셔서 그 심판의 불을 꺼 주시고 남은 십 분의 일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5절은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세단계로 강조된다. 먼저 벧엘을 찾지 말라고 했다. 벧엘이란 "엘의 집" 즉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그런데 4:4절에 보면 길갈과 함께 더러운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쓸모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 찾은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길갈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길갈도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길갈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엘세바는 유다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다. 창세기 26:23-25절에 보면 야곱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다. 브엘세바는 남쪽에서 올라와 하나님을 경배하려던 순례객들이 지나가다 쉬던 도시였다. 그런데 아모스는 브엘세바로 나아가지 말라고 했다. 나아간다는 말은 통과해서 지나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반대로 이집트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길이다. 약속의 땅을 떠나 완전히 우상숭배 하는 곳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브엘세바를 거쳐 지나가지 말라는 뜻이다.
우상숭배의 세단계는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찾아서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첫 단계이다. 그 다음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상숭배의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은 아예 우상숭배의 장소에서 살기 위해 이사를 가서 완전히 눌러앉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세단계는 시편 1편에서 하지 말라고 한 세가지 단계와도 같다. 시편 기록자의 악의 세 단계 중 첫째는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악인의 꾀를 따라가는 것은 오늘 말씀에서 벧엘을 찾는 것과도 같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죄인의 자리에 들어가서 함께 선다는 뜻이기에 길갈로 들어간다는 말과도 같다. 셋째 오만한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아예 오만한 자와 함께 터를 잡고 산다는 말이다. 이는 우상숭배의 장소에서 아예 터를 잡고 살기 위해 브엘세바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멸망으로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5절 뒷부분은 왜 그 세단계의 장소로 가지 말라고 하는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밝힌다. 길갈은 정녕 사로잡혀 간다는 것이다. 길갈은 바빌로니아로 사로잡혀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또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새번역처럼 폐허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찾아가던 벧엘은 완전히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그들이 예배하며 살던 터전들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그들이 들어가서 우상숭배를 하던 길갈은 반대로 포로로 잡혀 바빌로니아로 끌려 나가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6절은 4-5절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한 뒤 아모스가 자신의 말로 권고한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완전히 파괴하고 사로잡혀 가게 하신다고 한 말씀을 전한 뒤 그러니 너희들은 우상을 찾던 길에서 돌아서서 주님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아모스 자신이 다시 권고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내려오신다는 것이다. 요셉의 집이란 요셉의 두 아들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북왕국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처럼 내려와 다 삼켜버리신다는 것이다. 삼킨다는 말은 불이 다 태워버린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에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5절에서 벧엘이 완전히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을 생생하게 설명한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서 완전한 파괴는 불로 태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상숭배의 단계도 하나님을 찾던 길에서 떠나 자신들의 탐욕을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길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오늘날 믿는 자들이 벧엘을 찾는 것이다. 이 단계는 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지만 눈은 세상 영광에 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러한 세상 영광의 안에 들어가서 세상 영광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는 일시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다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믿는 자들이 길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눈만이 아니라 몸도 일시적으로 세상 영광에 들어가 세상 영광을 주기적으로 맛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세상 영광의 중심지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살려고 이사를 가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믿는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브엘세바를 통과하여 이집트로 이사 가는 길이다. 이러한 길은 완전히 불타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길이다. 불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길이다.
이러한 길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도 섬기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세상 영광과 쾌락에 눈을 돌리면서 하나님만 섬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로 눈을 돌리면 처음에는 잠깐 잠깐 하나님을 떠나 그 곳으로 자주 가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그곳으로 이사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그 길만이 살 길이다. 어제 수요일 말씀에서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그 말씀을 찾을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시고 안전하게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말슴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