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1-3 아모스는 젊고 힘이 넘치는 아름다운 처녀 같은 이스라엘이 갑자기 비명에 횡사했다며 장송곡을 불러주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멸하시고 그 백성들을 불 속에 집어 던지셔서 깨닫게 하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망해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장송곡을 부를테니 들어보라고 한다.
1절은 "이 말을 들으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너희를 두고 내가 지은 애가라는 것이다. 애가란 단순히 슬픈 노래라는 뜻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장송곡(dirge)이란 뜻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이미 죽었다고 보고 죽은 이스라엘을 위해 장송곡을 부른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완전히 멸망시킨다고 자신을 통해 이미 선포하셨기에 이제 사실상 이스라엘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는 죽은 이스라엘을 위해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오 이스라엘의 집이여" 라는 말이 1절 맨 끝에 붙어있다. Smith는 이 말이 전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배층 가문을 가리킨다며 예후 왕조의 종말을 선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Smith, 97). 그러나 같은 말이 5:25절에서도 나오는데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드렸다고 했기에 단순히 예후왕조를 가리킨다고만 볼 수는 없다. 더구나 6: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배층들은 이스라엘 집들이 따르는 귀족층들이라고 구별해서 말했기에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 집이란 전체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귀족층은 그 왕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찾아봐야 하고 그 기록자가 쓴 내용에서 먼저 찾아봐야 한다.
2절은 처녀 이스라엘이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서 쓰러졌다는 말은 나이가 많아 죽었을 때는 안쓰는 말이다. 갑자기 비극적으로 죽었거나 아무 죽을 이유가 없는데 죽었을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스라엘에 처녀라는 말을 붙인 것도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Fausset는 특별히 딸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처녀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나오는 기쁨을 의미한다고 했다(Fausset, 543). 아직도 젊고 싱싱한데 갑자기 죽었고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자기 땅에 그 시체가 던져졌는데도 아무도 일으킬 자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 땅에서 쓰러졌는데 일으킬 자가 없다면 모두 다 죽었다는 뜻이다.
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자기 집 마당이나 자기 밭에서 쓰러졌는데도 일으킬 자 조차도 없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천명이 나가던 성읍" 이란 천명의 군인이 전쟁터로 나가던 성읍이란 뜻이다. 천명이 군인으로 나간다는 말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성읍에 백명만 남는다는 말은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다 죽고 그 성은 적들이 들어와서 다 죽이고 불태우기에 그렇게 적은 수만 남는다는 뜻이다. 백명이 군인으로 나가던 성읍도 열명만 남는다 했으니 역시 군인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다 죽고 적은 수만 살아 남는다는 뜻이다.
아모스는 젊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처녀와도 같던 이스라엘이 갑자기 쓰러져 죽어서 자기 땅에 내던져졌는데도 아무도 일으킬 사람 조차도 없을 만큼 망할 것이라고 슬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아직도 그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처럼 충격적인 장송곡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이스라엘을 놓고 장송곡을 부르는 선지자의 마음이 어떠한 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듣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도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젊고 싱싱한 아름움을 뽐내는 처녀와도 같은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는데도 하나님 보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많은 것을 소유했는데도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세상 영광을 따라 산다면 아모스가 부르는 장송곡처럼 이미 죽은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횡사한 귀한 가문의 처녀 외동딸처럼 슬픈 모습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드는 보험과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관계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나라만 바라보며 이 땅에서 고통만 받으라는 뜻도 역시 아니다. 하나님과 늘 교제하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따라 순종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