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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35:1-10

Dawn Word

이사야 35:1-10

사막을 꽃길로 만들어 주셔서 걷게 하시는 하나님

2018. 10. 10.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35장 강해 설교

이사야 35:1-10 메마른 사막을 걷는 것과 같은 우리의 순례의 길을 꽃길 가운데 고속도로를 내주시고 찬양하며 하나님께로 나가게 하신다.

하: 사막을 꽃피는 땅으로 만들어 주시고 고속도로를 내 주신 하나님

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똑바로 걷자. 즐겁게 찬양하며 성도님들과 함께 걷자. 그 여행이 끝나는 날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부활한 몸으로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대적들을 심판하신 뒤 역청 강과 유황 땅의 불로 완전히 다 태워 없애버리신 뒤 그 땅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가득하게 하실 것이라 했다. 당시 화려한 지역을 황량한 사막으로만드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맨하탄을 네바다

사막으로 만드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 뒤 하나님께로 피한 남은 자들을 위해 황량한 사막을 에덴동산으로 만드시는 모습이다.

1절은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한다는 것이다. 또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한다고 했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 이고 건조한 땅은 찌아 이고 사막은 아라바로 모두 다른 말이다. 예레미야 2:6절에 보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질 땅" 이라고 해서 세가지 땅이 다 나온다. 이 세 단어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사전을 통해 의미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예레미야 2:6절에서 사막에는 사막과 구덩이 땅이라고 했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바위가 많은 험한 메마른 산지일 것이다. 이 세 단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지났던 여러 모양의 사막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이처럼 버려진 황량한 땅인 광야가 기뻐하고 사막이 즐거워한다는 말은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갑자기 풀들이 돋아나고 꽃들이 가득 피는 동영상과 같은 장면이다. 이 사막과 광야가 어디인가? 어떤 이들은 유다라고 한다. 유다 중에 특별히 예루살렘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본문에 묘사된 지형 때문에 시리아 사막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 화려한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발달한 모든 나라의 대표선수로 등장한 것처럼 광야와 사막도 믿는 자들이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온 세상의 땅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하시는 것이다.

2절은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칠 것이라 했다. 레바논의 영광이란 백향목이 빽빽하게 피어난 아주 비옥한 산을 말하는 것이다. 갈멜은 이스라엘 해변가에 있는 1724 ft 높이의 산이다. 샤론은 갈멜산 앞에 펼쳐진 해변가의 비옥한 평야이다. 샤론의 평야는 그 배경에 갈멜산을 끼고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 인근에서 최고로 비옥한 땅이다. 히브리인들이 글쓰는 방식에 맞춰 본다면 광야인 미드바르는 평야이고 사막인 아라바는 산지일 것이다. 광야 평야-사막 산지=레바논 산지- 샤론 평야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드바르는 네바다 사막의 과 같은 평지의 사막이고 아라바는 산이 많은 유타의 사막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유이기에 메마른 사막과 같은 길을 가는 믿는 자들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3절의 맥풀린 손과 떨리는 무릎은 강한 대적들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맥풀린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라는 것은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돔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세상은 사막으로 만들 것이고 사막과 같은 삶을 사는 믿는 자들은 레바논의 삼림과 샤론의 평야처럼 만들 것이니 힘을 내라는 것이다. 4절은 두려워 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3절에서 비유로 말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보복하러 오고 계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신 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5-7절은 3-4절에 나온 약함이 강함으로 바뀌는 모습이 좀 더 구체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5절은 눈먼 자가 보게 된다는 것이다. 눈 먼자는 약한 자인데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귀먹은 사람도 약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셔서 듣게 하신다는 것이다.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6절은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뛴다고 했다. 말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른다 했다. 다리를 저는 사람은 말씀을 알고도 똑바로 행하지 못하던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제 저들은 똑바로 걸을 뿐 아니라 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기까지 했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할 차례이다. 그래서 말못하는 혀가 하나님을 증거할 뿐 아니라 노래까지 한다는 것이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뛰는 것이나 말못하는 사람이 노래하는 것이나 둘 다 한 단계를 건너 뛰어 최고로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르는 것은 생명과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7절은 생명의 근원인 물의 이미지가 계속된다. 불타는 사막이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된다는 것이다. 에돔 땅이 승냥이 땅이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승냥이 떼가 살던 곳에 갈대와 왕골이 난다는 것이다. 갈대와 왕골은 물이 많은 강가의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다. 사막이 항상 물에 젖어있던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인 고센 땅처럼 된다는 것이다.

8-10절은 이 부분의 클라이막스이다. 8절은 이제 그곳에 큰 길 곧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기에 그길을 거룩한 길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는 거룩한 자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부정한 제물과도 같은 사람이다. 죄사함을 받지 못햇기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길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고속도로인 것이다. 하나님께로 직접 연결된 고속도로인 것이다.

9절은 거기에는 사자도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이 없다고 했다. 거기는 오직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이 그 길을 따라 갈 것이다. 원어에는 고향이란 말이 없다. 새번역 번역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와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고향으로 간다는 말을 넣은 것이다. 구속함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놓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이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무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10절은 구속함을 받은 사람이 주님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역시 원어에는 예루살렘이란 말이 없다. 그냥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 돌아온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기뻐 소리를 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시온도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뜻으로 읽어야지 예루살렘이라고 하면 안된다. 성경의 비유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구절을 근거로 혈통의 이스라엘이 본래의 땅 예루살렘에서 회복되어져야 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사야는 새로운 땅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 회복되어진다고 비유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땅에서는 기쁨이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친다 했다. 거기에는 슬픔과 탄식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했다.

이 말씀을 혈통의 이스라엘로 해석하고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해석하면 앞에서 말한 비유들과 맞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본래 사막도 광야도 아니기에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앞부분은 비유로 해석하고 뒷부분은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잘못하는 것이다. 물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세운 것으로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일 뿐이다. 이사야가 그리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님 오심으로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고속도로가 열렸고 우리는 지금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이다. 이 여행을 끝마치는 날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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