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1:11-12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억누르고 분노를 터트리며 그 분노를 영원히 유지한 에돔은 남에서 북까지 완전히 다 불살라버릴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형제의 언약을 깨고 모든 사람을 에돔에 팔아 넘긴 두로를 하나님께서 완전히 불사르신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과 진짜로 피를 나눈 형제인 에돔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다.
11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라는 말로 시작하며 역시 3+1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에돔은 항상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야곱과 에서가 어미 뱃속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하여 계속 싸운 것처럼 이스라엘과 에돔 역시 그렇게 싸웠다. 에돔은 이스라엘로부터 독립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게 복속되어 있었다.
먼저 첫번째 동작은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갔다고 했다. 두번째 동작은 개역에서 "긍휼을 버리며" 라고 번역한 말인데 새번역은 "형제 사이의 정마저 끊고서" 라고 번역한 말이다. 이는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억누른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에돔은 본래 쌍둥이 형제이기에 자연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올라오는데 그런 마음을 억지로 누른다는 뜻이다. 셋째 동작은 항상 맹렬히 화를 내는 것이다. 이는 그의 분노는 끊임없이 찢는다는 뜻이다. 화가 나서 모든 것들을 다 때려 부수는 장면이다. 넷째 동작은 분을 끝없이 품었다는 것이다.
에돔이 형제인 이스라엘을 칼을 들고 쫓아가다 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도 억누르고 계속 따라간다. 제 것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은 터트리고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불쌍히 여기는 감정은 반대로 억누르는 것이다. 분노는 마치 가득 쌓여 있는 폭발물들과도 같다. 하나가 터지면 계속 연달아 터지는 것이다. 상을 뒤엎고 그릇을 내던져서 분노를 표현하면 시원할 것 같지만 이는 화약고에 불을 지른 것과도 같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분노를 다 터트리고 나면 언젠가는 멈추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돔은 그 분노를 영원히 유지하고 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12절은 하나님께서 데만에 불을 보내겠다고 했다. 창세기 36:11절을 보면 데만은 에서의 손자의 이름이다. 에서의 손자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페트라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Fausset, 530). 예레미야 49:7절에 보면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라는 말이 있다. 데만 사람들은 지혜로 유명한 도시였다는 뜻이다. 이어서 보스라의 요새들을 삼킨다고 했다. Smith는 데만은 남쪽이고 보스라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며 남쪽에서 북쪽까지 전체를 다 불사른다는 뜻이라 했다(Smith, 55).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5:21-22절에서 분노는 살인죄라고 했다. 실제 죽이지 않아도 죽일만큼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것이 곧 살인죄와 똑같다는 것이다. 살인하는 행동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분노를 터트리는 것 자체가 살인죄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한번 터트리면 걷잡을 수 없게 커져간다. 절대로 분노를 터트리면 안된다. 그것은 에돔과 같이 완전히 멸망할 죄이다. 그 반대는 오늘 말씀에서 에돔이 억누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며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일이다. 절대로 절대로 분노는 터트리지 말자. 그것은 형제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삿대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