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13-14 곡식과 포도주가 없어져서 제사를 가 중단될 것이니 제사장들은 상복을 입고 슬퍼하고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이전 말씀은 밭의 소산들이 다 없어지고 모든 과일나무들이 다 말랐으며 사람들의 즐거움도 다 말라버렸으니 곡식을 생산하는 농부들과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은 슬퍼하라고 했다. 이제 제사를 드릴 수도 없게 되었으니 제사장들에게 슬퍼하라는 말씀이 이어진다.
13절은 제사장들에게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피 울라고 했다. 제사장의 흰 옷 대신 검은 염소 털로 짜여진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이는 장례식 때나 큰 슬픔을 당했을 때 입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단에서 수종 드는 자들에게 울부짖으라고 했다. 내 하나님께 수종 드는 자들에게는 굵은 베를 입고 밤을 새우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곡식과 포도주가 떨어져서 곡식을 드리는 소제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고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전제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굶어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부끄러워하고 과수원지기는 곡하라고 했는데 제사장은 굵은 베를 입고 밤이 새도록 통곡을 하라는 것이다. 슬픔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다가 제사장에 대해서 최고조에 달한다.
14절은 금식일을 따로 구별해서 정하라는 것이다. 성회를 소집하라는 것이다. 장로들과 그 땅의 모든 주민들을 다 모으라고 했다. 모두가 다 함께 모여서 금식하며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했다. 단순히 슬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먹을 거리가 떨어져 슬퍼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 드릴 헌금이 없고 교회에 헌금이 들어오지 않아 예배가 중단되는 것 때문에 슬피 운다면 의미가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보다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길 바라시는 것이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 드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했다면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 한다. 설령 교회 문이 닫히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문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제대로 모일 곳도 없었다. 어떤 때는 핍박 때문에 지하의 무덤에 숨어 살면서 예배를 드린 때도 있었다. 침례를 받으러 물로 나갈 수 없기에 밤에 몰래 물을 길어다가 들어 붓는 것으로 대신할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던 성도들이 있었다.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