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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13:9-14

Dawn Word

호세아 13:9-14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는 하나님

이슬을 머금은 백합 · 호세아 14장

2020. 7. 23.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13장 강해 설교

호세아 13:9-14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 죄악의 길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죄가 잠시 보관중이며 이스라엘은 그 죄악에 질식해서 죽고 사망과 스올의 공격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 두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건져 내시고 언약을 맺으셔서 신부로 삼으셨는데 그 백성들은 배가 부르게 되자 다른 신들을 섬겼으니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9절은 원어에서 "너의 완전한 멸망! 오 이스라엘!"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8절에서 야생동물들이 공격하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대적하실 것이니 이제 완전히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것이 아니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멸망의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돕는 자인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멸망하게 한 것이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공격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돕는 자였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10절은 원어에서 "네 왕이 이제 어디 있느냐?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어서 "너희가 요청한 재판관들, 우리에게 왕과 왕자들을 주소서" 라고 했다. 이는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요구했던 것인데 결국 하나님께 왕과 왕자들을 달라고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어진 것은 대부분 열왕기하 17:1-6에서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을 배반하여 살만에셀이 호세아를 잡아 끌고 간 일을 가리킨다고 말한다(Dearman, 324; Stuart, 205).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1절은 내가 분노함으로 네게 왕을 주었다고 했다. 이는 사무엘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왕을 주셨다는 뜻이다. 당시 하나님께서 직접 그 백성들을 다스리셨는데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대신 왕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왕을 주셨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말은 분노하여 콧김을 내 품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어서 진노함으로 왕을 폐하셨다고 했다. 진노란 넘친다는 뜻이다. 용광로에서 뜨거운 쇳물이 넘쳐 흐르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콧김이 나는 것은 넘친다는 신호이다. 마치 솥에서 김이 나면 곧 끓어 넘친다는 신호인 것과도 같다. 폐하셨다는 것은 기원전 725년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호세아가 앗시리아에 잡혀간 것을 말한다.

12절은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 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다고 했다. Garrett은 저장되었다는 말을 사무엘하 20:3절에서 여인들을 가두어 두어 성관계를 갖지 못하게 한 경우에 쓰였다며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간음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바알의 자식들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Garrett, 263). Garrett의 해석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바알의 자식들을 낳을 수 없게 막으셨다는 뜻이 된다. 이는 이스라엘이 죄의 자식들을 낳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Dearman은 묶어서 저장한다는 말이 임신과 관련된 비유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Dearman, 326). 그러면 이스라엘의 불의가 봉함 되었고 그 죄는 어미 뱃속에 저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13절에서 해산하는 어미 뱃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는 이스라엘의 불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이 잉태한 불의가 태어나지 못하고 죽게 하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두 사람 모두 13절의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와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보관한다는 말은 임신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의를 묶는다는 말은 임신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가 없다.

불의와 죄는 구약에서 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의미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시편 85:2; 이사야 1:4; 27:9; 예레미야 14:20).

먼저 불의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 딴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다. 또 죄란 하나님의 길을 막 벗어났다는 뜻이다. 따라서 죄는 길을 막 벗어난 것이고 불의는 그 죄가 진행되어 한참 멀리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문서를 묶어서 서고에 보관하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불의는 지금 묶여지고 있는 중이다. 그 죄는 이미 오래전에 묶여서 서고에 저장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서를 묶어 서고에 보관하는 그림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범죄하고 있는데도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고 하나님의 인내이다. 때가 되면 그 문서들을 다시 꺼내 오라고 하셔서 읽으시고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보관된 문서들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읽으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아직 하나님의 형벌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곧 닥칠 것이니 다가올 심판을 미리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의미가 된다.

13절은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한다고 했다. 보통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가 나오면 해산하는 여인이 주인공인데 여기서는 그 여인에게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지 않고 그에게 닥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지혜롭지 못한 아들이다. 어미의 자궁 문에서 지체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어미의 자궁 문에 끼어 있는 아기의 그림이다. 고대에는 아이를 낳을 때 지체되면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꺼낼 의술이 없었다. 자궁 문에 끼어 있는 아기는 지체되면 질식해서 죽고 마는 것이고 그 어미 역시 죽게 된다.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죄를 즉시 심판하시지 않고 서고에 저장하시는 모습이었다면 13절에서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시지 않으실 때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산도에 끼어 있는 태아로 비유한 것이다. 계속 회개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으면 그 어미인 불의와 죄의 산도에 끼인 채 불의와 죄로 인해 질식해서 죽게 된다는 뜻이다.

14절은 새번역과 개역과 영어의 ESV, NIV는 모두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선언인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희망적인 선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후 문맥은 심판을 말하고 있기에 문맥상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NASB와 NLT와 RSV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번역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겠느냐?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느냐?" 라는 질문한다면 이는 절대로 속량하지 않고 구속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Dearman도 수사학적 질문으로 본다(Dearman, 328). Stuart 는 이 구절이 희망적인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Stuart, 207). 13절에서 산도에 끼어 있는 태아의 그림과 연결해 볼 때도 역시 그렇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산도에 끼어 있는 이스라엘을 구해내겠느냐 라는 질문인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꺼내 주시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사망아 네 가시가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했다. 사망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시라면 스올은 전갈의 독침과도 같다. 사망과 죽음아! 어디 있니? 이 녀석들 빨리 쏴서 죽이라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라고 말했는데 뉘우침이란 하나님의 슬픔이고 동정심이다. 이제 하나님께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을 의지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제 멸망이 임박했다는 것을 문서를 묶어서 저장하는 그림으로 전했다. 그러한 죄악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을 산도에 끼어 있는 태아로 비유하며 멸망할 것이라 했다. 또 다시 살려 주실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죄란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강도짓하는 것이 아니다. 죄란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말로만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 영광을 따라가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딴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기다리시는 동안에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에 질식해서 죽게 될 것이고 사망이 찌르고 스올이 쏘는 독침에 맞아 죽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다. 영원한 멸망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계실 때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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