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3:1-3 스스로 성공하여 말만해도 인정받게 되면 교만해져서 헛된 우상숭배에 빠진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 날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완전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란으로 도망한 야곱처럼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길 원하시지만 듣지 않는 백성들을 향해 분노하시며 심판하신다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말한 뒤 미래에 완전히 망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1절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이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가장 강력한 지파였는데 호세아에서는 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여로보암 1세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떨었다고 했다. 말만해도 사람들이 떨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자신을 높인 것이다. 그렇게 교만해진 다음에는 하나님도 두렵지 않게 되어 바알을 통해서 죄를 범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다가 죽었다는 것이 과거의 어느 사건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Dearman은 9:10 뒷부분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에서 우상숭배를 한 것(민수기 25장)과 출애굽기 32-34장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을 가리킬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며 바알에 의해 죽은 것이 실제 이스라엘이 죽은 것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Dearman, 318-19). Livingstone도 바알 숭배자들에 의해 남북왕국이 나뉘었고 특별히 아합의 아내 이세벨 때 에브라임은 바알 숭배로 철저하게 더럽혀졌다며 이러한 상황이 에브라임의 사망을 가리킨다고 했다(Livingstone, 615). 에브라임이 존경을 받게 되자 스스로 높이다가 바알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은 실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영적 죽음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
2절은 원어에서 "그리고 지금은" 이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에 에브라임의 호세아 당시 현재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사망한 다음에도 에브라임은 더욱 더 범죄를 했다는 것이다. 은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서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 은세공업자가 만든 것인데도 그들은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 하여금 송아지와 입을 맞추게 하라"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송아지와 입을 맞추게 하라는 것은 송아지를 예배하고 송아지를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일 것이다. 호세아는 금송아지라 하지 않고 "송아지" 라고 한 것은 그러한 우상숭배가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동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3절은 그 결과 미래에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둘 씩 묶을 수 있다. 먼저 아침 구름과 쉽게 사라지는 이슬이다. 둘 다 건조한 사막지역인 이스라엘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해만 뜨면 아침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슬도 역시 해만 뜨면 즉시 사라진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타작 마당의 왕겨와 굴뚝의 연기는 둘 다 바람에 의해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섞인 것을 바람에 날리면 알곡은 아래로 떨어지고 쭉정이는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굴뚝의 연기도 역시 바람에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멸망하는 것도 역시 말에 힘이 생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말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해 주고 그 말을 듣고 따르며 존경해준다면 멸망의 시작이다. 그럴 때 스스로 깨닫고 자기를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다음 단계인 자기를 높이는 멸망의 둘째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20:26-28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하셨다. 마음으로는 자기가 높이면서 말로만 겸손한 척 하라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실제로 낮아져서 종이 되어 욕을 먹고 짓밟히면서도 섬기라는 뜻이다.
그렇게 자기를 높이게 되면 하나님도 우습게 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세상을 두려워하며 세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단계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서 존경을 받고 성공하게 된 성도들은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이나 영원한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서 자신이 누리는 것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그러한 영광은 해만 뜨면 사라지는 아침구름이나 이슬과도 같고 바람에 날아가서 사라지는 타작마당의 쭉정이나 굴뚝의 연기와도 같이 되는 것이다. 완전히 멸망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공한 목회자들이 말년에 다 그렇게 되는 것을 뉴스로 본다.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기독교인 평신도들도 말년에는 다 그렇게 되는 것을 뉴스로 본다. 사람은 다 그런 존재다. 말만 하면 사람들이 경외심에 사로잡혀 존경을 한다면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교만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올무이고 덫이다. 크게 성공하지 않았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교회에서 작은 일로 인정을 받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역시 이러한 마귀의 올무에 거의 예외없이 걸리고 교만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오히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라고 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한 뒤 교만해져서 멸망하게 될까봐 자기 눈 밑을 쳐서 시퍼렇게 멍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도 그렇게 존경받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겸손하게 남을 섬기되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섬기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자격미달이 되어 멸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는 우리가 완벽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주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다 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높여준다 해도 겸손히 낮은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완벽하게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높아지려는 자신의 눈두덩이를 쳐서 시퍼렇게 멍들게 해서라도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