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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12:1-8

Dawn Word

호세아 12:1-8

헛된 거짓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2020. 7. 17.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12장 강해 설교

호세아 11:12-12:8 하나님을 포위하고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노력으로 자신들을 지키려던 이스라엘은 속이는 장사꾼과 같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잡고 계시며 돌아오길 간절히 원하신다고 하셨다. 이제 거짓으로 속이던 에브라임을 향해 돌아오라고 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12절은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에워싸고 이스라엘 집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에워쌌다고 했다. 에워쌌다는 말은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있는 그림을 나타낸 말이다. Stuart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에워쌌고 그들의 무기는 거짓말과 속임수라고 했다(Stuart, 189).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포위한 채 거짓말이라는 약한 무기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또 좀 더 강한 무기인 속임수로 공격하는 장면이다.

영어 번역들은 12절 뒷부분을 서로 다르게 번역했다. ESV와 NLT와 NRSV는 이러한 이스라엘과는 달리 유다는 아직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고 거룩하신 분에게 신실하다고 번역했다. Dearman은 유다도 부정적으로 번역한 것은 히브리어의 병행법에 따른 것이고 유다를 긍정적으로 본 것은 히브리어 원문의 자연스러운 번역이라며 유다는 사마리아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나타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긍정적인 번역을 지지했다(Dearman, 297).

그러나 NASB와 NIV는 신실하다는 말이 거룩하신 분을 수식하는 말로 보고 유다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분을 대적한다고 번역했다. 개역과 새번역은 모두 NASB와 NIV를 따라 유다 역시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번역했다. Stuart는 유다를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한 히브리어 본문이 고대의 번역들과 다르기에 의심할 여지 없이 후대에 고친 것이라고 말했다(Stuart, 189). 구약성경을 기록하여 전하던 자들이 유다 사람들이었기에 자신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고쳤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병행법은 세 개 이상의 구절이 나란히 병행이 될 때는 거의 예외없이 점점 더 발전하는 그림이다. 하나님을 포위하고 거짓말로 공격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포위하고 속이는 것이 좀 더 적극적인 공격이다. 그 다음에 ESV와 NLT와 NRSV가 유다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고 번역한 것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12:2절에서 유다를 심판하신다고 했기에 이 부분의 문맥을 보아도 유다 역시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호세아 전체의 문맥으로 보아도 역시 그렇다.

하나님을 공격하는 모습이 점점 강해지는 비유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이 연결될 수 있다. 먼저 에브라임은 하나님을 포위하고 거짓말의 화살을 쏜다. 이스라엘 집은 속임수의 투석기로 거대한 돌을 하나님을 향해 날린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 집은 모두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남왕국 유다는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공격을 한다. 북왕국은 말로 하나님을 속인다면 남왕국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12:1절은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쫓아간다고 했다. 먹는다는 말은 본래 가축들이 풀을 뜯는다는 뜻이기에 에브라임을 양떼로 비유한 그림언어이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뜯어먹는다 했기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동풍을 따라간다고 한 것은 동풍을 목자 삼아 따라가는 그림이다. 그런데 팔레스틴 지방에서 동풍이란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고 회오리 바람까지 동반한다. 모든 식물들을 다 말라죽게하며 다 파괴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위협적인 것이다.

거짓과 포학을 더한다는 말은 자신들이 목자로 삼은 동풍의 힘을 의지해서 거짓말로 속이고 폭력으로 파괴한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을 어기고 하나님을 향해 거짓말을 하며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호세아의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고도 오히려 호세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정부들을 시켜서 호세아를 때리게 하는 장면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들이 바람을 먹고 동풍을 쫓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어서 설명을 한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낸다고 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앗수르와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또 이집트에는 기름을 선물로 보내어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팔레스틴 지방은 올리브 오일로 유명했기에 자신들의 특산물을 선물로 보내서 이집트의 군대의 도움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동들이 바람을 먹고 동풍을 목자 삼아 따라가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절은 유다와는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신다고 했다. 논쟁한다는 말은 법정에서 그 죄를 기소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다는 아직 그 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재판이 진행중인 것이다. 반면에 야곱은 그 행실대로 벌하신다고 했기에 이미 그 형이 확정되어 집행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대로 그에게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3절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죄를 말한다. 야곱은 모태에서부터 그 형의 발꿈치를 잡고 씨름을 했다는 것이다. 발꿈치를 잡았다는 말은 창세기 27:36절에서 에서가 야곱이 장자권을 빼앗는 공격을 했다고 불평할 때도 나왔다. 따라서 이 말은 야곱이 태중에서 형을 공격하여 장자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과 어느정도 자라서는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것 두가지를 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구절은 어른이 되어서는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는 것이다. 흔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을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는 모습으로 말하는데 호세아는 형도 공격하고 하나님도 공격한 탐욕스러운 사람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스라엘은 조상 때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4절은 야곱이 천사를 공격하여 이겼지만 울며 그에게 간구했다는 것이다. 울며 간구했다는 말은 창세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Garrett은 울며 간구했다는 말이 창세기 33:3-4절에서 야곱이 에서와 싸워 이겼지만 에서에게 일곱 번 절하고 울었다는 말과 연결해서 설명하면서 이 구절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서 울며 간구했다는 것과 하나님과 싸워 이겼지만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Garrett, 238). 이어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야곱이 이겨서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야곱을 만나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절은 이러한 여호와가 만군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라고 했다. 이는 4절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야곱이 에서와도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의 천사와도 싸워서 이겼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에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6절은 이제 결론적으로 말한다. 너의 하나님께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 했다. 너희 조상 야곱이 그렇게 애를 썼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도 돌아오면 야곱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너희들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이 한결 같은 사랑을 베풀며 항상 공정한 판결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야곱이 씨름한 것과 같은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고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바라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7절은 에브라임의 악함을 다시 고발한다. 에브라임은 장사꾼이라서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사꾼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가나안" 이다. 이는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나안 이라는 말이 장사꾼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속이는 장사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에브라임이 속이는 장사꾼이라는 것은 또한 그 조상 야곱을 닮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8절은 에브라임이 스스로 부자라고 말하며 재물을 얻은 것 중에 죄라 할만한 불의를 자신에게서 찾을 자가 없다고 말한다. 속이는 장사꾼이면서도 자신은 정당하게 벌어들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속일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도 그렇게 속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자비를 얻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에브라임이 하나님을 포위하고 공격하며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자신들을 지키려는 것은 바람을 먹고 동풍을 목자 삼아 따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마치 야곱처럼 속이는 것이고 속이는 장사꾼과도 같은 것이라 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우리는 세상에서 얻을 것은 바람과 멸망의 동풍 뿐인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성경에서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하던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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