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0:9-15 하나님께서는 마음 밭을 갈아서 공의의 말씀을 심고 한결같은 사랑을 거두길 원하셨는데 그 반대로 악을 심고 죄악을 거두어 먹는 자들은 완전히 망하게 하신다고 경고하신다.
이전 말씀에서는 잎만 무성한 포도나무처럼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고 두 마음을 품은 여인과도 같이 거짓된 경건을 보이며 사는 자들은 그 의지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고 멸하신다 하셨다. 오늘 말씀은 전쟁의 비유가 앞뒤로 감싸고 있고 그 가운데에는 밭 가는 소에 비유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그 백성들이 악을 멈추고 공의와 인애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9-10절은 전쟁의 그림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말한다.5:8절에서 기브아는 전쟁의 장소로 나온다. 9:9절에서는 사사기 19-20장을 배경으로 심히 부패하다고 한 것이다. 베냐민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첩을 강간하다가 죽게 한 곳이 기브아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오늘 말씀 9-10절의 기브아 시대 범죄는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Garrett은 사울의 기브아는 요새였다는 것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고 말한다(Garrett, 214). 그러한 기브아를 상징으로 사용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자신들의 군사력을 의지한 죄를 지적한 것이다.
Dearman은 원어에서 9절 끝에 나오는 "범죄한 자손들에 대하여" 이라는 말을 10절 앞부분에 붙여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말한다(Dearman, 269). 영어의 NRSV도 "범죄한 자손들에 대하여" 라는 말을 10절에 붙여서 번역했다(I will come against the wayward people to punish them). Garrett도 70인역 구약성서의 사본의 증거를 들어 10절 앞부분에 붙여서 이해해야 옳다고 말한다(Garrett, 216). 그렇다면 9절 끝부분은 10절 앞부분에 붙여서 "내가 원하는 때에 범죄한 자손들을 징계하리니" 가 된다.
그렇게 읽는다면 9절 뒷부분의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라는 질문의 의미가 훨씬 더 분명해진다. 호세아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의 전쟁 때나 사울의 때와 같이 성벽과 무기들을 의지하고 그것들을 통해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기브아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꺾으신다는 것이다.
10절 뒷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을 꺾고 이렇게 징계하시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가지 죄에 걸렸기 때문이다. Butterworth는 두가지 죄가 우상숭배와 하나님 대신 동맹국들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Butterworth, 776).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이웃 나라의 신들을 섬기고 그들의 군사력을 의지해서 안전하게 살려고 한 것이다. 걸렸다는 말은 줄로 묶였다는 뜻이다. 스스로 두가지 죄를 지어 스스로를 얽어 맸다는 뜻이다.
10절 뒷부분의 두가지 죄로 스스로를 얽어 맸다는 말은 11절에서 멍에를 맨 암소의 그림과 연결된다. 에브라임은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곡식을 탈곡하는 썰매를 끄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이는 훈련이 잘 된 소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름다운 목을 가로질러 멍에를 걸쳐 놓으신 것이다. 에브라임은 북왕국을 상징하고 유다는 남왕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야곱은 이스라엘 전체의 조상이기에 남북왕국 모두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묵은 땅 즉 딱딱한 땅을 갈아서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12절은 그렇게 딱딱한 땅을 갈고 덩어리를 깨뜨려서 해야 할 일을 맡기신 것이다. 그것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는 것이다. 공의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의 밭을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공정한 재판과도 같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의 부드러운 마음 밭에 심으면 우리가 거둘 것은 공의가 아니라 인애 즉 한결같은 사랑이다. 공의로운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다음에 우리가 사람들을 그 말씀에 따라 함부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심은 뒤에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아주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라는 것이다. 딱딱한 땅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길 간구해야 하는 때라는 것이다. 간구해야 할 것은 공의를 비처럼 내려 달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비처럼 뿌려 달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 마음 밭이 준비가 된 뒤에 하나님께 달라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의 씨앗을 비처럼 뿌려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1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원하시는 것과는 반대로 했다고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이들은 악을 밭 갈아 심고 죄를 거둔 것이다. 공의로운 말씀을 마음에 심어야 하는데 악한 탐욕을 마음에 심은 것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죄악 된 행동이다. 잠언 22:6-8절은 악을 뿌리는 것을 이자를 받고 재물을 빌려주는 것으로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악한 탐욕을 심고 가난한 사람들을 수탈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먹는 것은 거짓의 열매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며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반대로 자신들의 탐욕의 길을 따라가며 자신들이 소유한 많은 용사들을 의지한 것이다.
14-15절은 다시 전쟁의 그림으로 설명한다. 14절은 이들이 의지하던 군대의 힘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백성들 중에 요란한 함성이 들려온다는 것이다. 네 요새들이 모조리 다 파괴된다는 것이다. 벧아벨이 살만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것 같이 된다는 것이다. 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다고 했다. 어머니와 자식을 모두 바위에 메어쳐서 박살을 냈다는 것이다. Dearman은 살만이 기원전 9세기 앗시리아의 통치자였던 살만에셀 3세를 가리킨다고 했다(Dearman, 273). 살만에셀은 기원전 841년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성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왕 예후에게서 공물을 받았던 것이다.
15절은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에게 이같이 행한다고 했다. 그렇게 성을 다 부수고 어미와 자식들을 바위에 메어쳐서 박살을 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의 큰 죄악 때문이다. Garrett은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한다는 것이 전쟁이 시작되자 마자 왕이 죽는다는 뜻이라고 했다(Garrett, 217-18). Fausset은 새벽이 떠오르는 해로 인해 정신없이 도망가는 것처럼 아주 신속하게 왕이 죽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Fausset, 495).
오늘날 믿는 자들도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고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섬기며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밭을 부드럽게 갈게 하신 이유는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게 하시려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심고 그 거둔 것으로 자신의 배만 채우려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역시 완전히 망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를 새겨듣고 우리가 심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거두어야 하는 것은 한결 같은 사랑이다. 죽도록 싫은 사람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같은 사람들도 계속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