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0:1-8 잎만 무성한 포도나무처럼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고 두 마음을 품은 여인과도 같이 거짓된 경건을 보이며 사는 자들은 그 의지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고 멸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십대 소녀에서 더러운 창녀로 변했다며 그 모든 열매들도 다 죽게 하시며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 떠돌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두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을 벌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한다.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한 것은 이사야 5:1-7절에서도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리셨는데 들포도가 맺혔다고 한탄하시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이스라엘은 무성한 포도나무라 했다. 무성하다는 말은 본래 쓰레기가 된다는 뜻이다. 이사야 19:3절에서는 "쇠약할 것이라" 고 했고 이사야 24:1절과 3절에서는 땅을 공허하게 한다는 말로 번역된 말이다. 예레미야 19:7절과 51:2절에서는 텅 비게 한다는 뜻으로 번역된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번역될 수 있나? 무성하다는 말은 영어 번역들에서는 "luxuriant"
로 번역된 말인데 이사야나 예레미야는 쓰레기가 되고 텅 비게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에 대해 Garrett은 미국 남동부 지방에서 잘 알려진 칡넝쿨(kudzu)이 다른 식물들을 다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으로 이 단어를 설명한다(Garrett, 207).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의 농부들이 1876년 토양침식을 막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칡넝쿨은 콩과 식물로 뿌리혹 박테리아가 발달해 있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모든 나무들을 뒤덮고 자라서 다 죽게 한다.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온 산을 다 뒤덮어 버린다. 미국 사람들은 칡 뿌리를 먹을 줄 몰라 그렇게 심각한 유해식물이 되었나 보다. 이스라엘도 이러한 칡 넝쿨처럼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먹을 수 있는 열매는 하나도 없는 포도 덩굴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열매를 많이 맺을수록 제단을 더 많이 만들고 그 땅이 번영할수록 기둥들을 더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열매는 잎사귀만 무성하게 온 땅을 뒤덮지만 먹을 수 없는 열매만 열린다는 것이다. 열매가 많이 맺고 번영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우상의 제단을 많이 만들고 우상 숭배하는 기둥들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다. 칡 넝쿨이 온 땅을 덮듯 온 이스라엘이 우상들로 뒤덮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통해 찬양 받으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려고 했는데 완전히 쓸모없이 땅만 버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2절에서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은 원어에서 그들의 심장이 둘로 나뉘었다는 뜻이다. 이는 1절의 모양만 무성한 포도 덩굴과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무성한 포도 덩굴 같다. 그들은 겉으로는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을 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으로는 우상을 사랑하고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무성한 포도나무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우상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말로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고 현모양처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 마음 안에는 딴 남자가 가득히 들어있는 것과도 같다. 만약 남편이 출장 가거나 없으면 정부를 불러들여 잠자리를 하는 여인의 모습과도 같다. 그렇게 간음하는 여인과 같기에 반드시 그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고 그들의 주상을 파괴하신다는 것이다.
3절에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왕이 없다" 라고 말한다. 원어에서는 바로 이어서 "왜냐하면 우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왕이 없다고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왕은 분명히 여호와를 가리킨다. 이 구절을 역사적으로 해석한다며 실제 어느 왕이 암살되었느니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에게 잡혀갔느니 라는 식으로 해석하려 하면 안된다.
잎사귀만 무성한 포도 덩굴 같고 바람난 유부녀 같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왕이 있다고 해도 그 왕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 이들이 왕이 없다며 그 왕이 우리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느냐고 따지듯 반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탐욕을 채워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부귀영화를 주고 번영하게 해 줘야 하는데 안해 주시기에 여호와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자신들에게 부귀영화와 번영을 줄 우상들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뜻이다.
4절은 2절에서 두 마음을 품은 것을 재판하는 장면과 맹세하는 장면으로 비유한 것이다. 헛된 말을 하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거짓말로 증언하고 사람들과 언약을 맺을 때 거짓 맹세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진실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거짓으로 속이려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두 마음을 품은 바람난 유부녀 같았는데 사람들을 향해서도 이렇게 두 마음을 품고 속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다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는 것은 농부가 밭에 나가 자신이 심은 채소를 거두는 것과도 같다. 거두러 나갔는데 먹을 수 있는 채소는 없고 독초 뿐이라는 것이다. Garrett은 여기서 독초의 비유는 무성하다는 뜻이 아니라 먹으면 죽게 되는 위험한 것이라는 뜻이라 했다(Garrett, 208). 이는 이스라엘이 거짓 경건과 외식과 우상숭배만 생산해 내는 가짜 채소라는 뜻이다.
5절은 그들이 마음 속으로 섬기던 우상들이 사라지자 슬퍼하는 모습이다. 이제 거짓으로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던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사마리아 거민이 벧아윈의 송아지를 인하여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 백성이 그것을 위해 통곡을 하고 우상 숭배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영광으로 여기던 우상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간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이 떠나간 것에 대해 통곡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숨은 마음이 이제 다 드러난 것이다.
6절은 그것이 앗시리아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앗시리아가 와서 그들이 섬기던 송아지 우상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야렙 왕이란 앗시리아 왕의 별명이다. 영어 번역들은 "the great king"으로 번역했다. 이어서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계책을 슬퍼할 것이라 했다. 이들은 우상을 섬겨서 그 우상을 통해 번영을 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우상을 앗시리아로 옮겨버렸으니 그들의 계책이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수치를 받는 것이고 자신들의 계책을 슬퍼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이스라엘이 회개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이 의지하던 우상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다. 7절은 사마리아 왕이 마치 물 표면에 둥둥 떠내려가는 나무 막대기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왕도 물에 둥둥 떠 내려가 버렸다는 것이다. 왕은 땅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와 같아야 한다. 그런데 사마리아 왕은 물에 떠 내려가는 나무 막대기처럼 아무런 힘도 없이 둥둥 떠 내려가기만 한다는 것이다. 개역처럼 거품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떠 내려가다가 금방 흩어져 버리는 모습이 된다. 원어의 의미는 나무 막대기로 보는 것이 옳다. 왕권을 나타내는 막대기가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일 것이다.
8절은 왕 뿐만 아니라 아웬의 산당도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 위에 난다고 했다. 이는 9:6절에서 그들의 장막 안에 가시덩굴이 퍼진다는 것과 같은 그림이다. 이제 산당에도 그렇게 가시와 찔레가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 고통이 얼마나 큰지 산보고 자신들을 덮으라고 할 것이고 언덕들에게는 우리 위에 무너지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진이 나서 자신들을 완전히 뒤덮어 묻어 달라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우상을 섬기며 우상을 통해 번영과 부귀영화를 누리려 했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속 마음을 드러내시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에서 시작하여 그들이 의지하던 왕과 그들이 의지하던 우상의 산당까지 다 파괴하시고 그 백성들도 큰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산과 언덕들에게 자신들을 묻어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면서 세상을 의지하며 세상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려 한다면 그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가시는 것이다. 그 의지하던 것들은 완전히 파괴하시는 것이다. 잎사귀만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은 거짓된 경건을 행하는 자들은 독초와도 같은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하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누가복음 13:5-9절에서도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신다는 비유가 나온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나 포도 덩굴 같은 외형적인 거룩한 모습만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시고 완전히 쓸어 버리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