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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9:10-17

Dawn Word

호세아 9:10-17

간음한 여인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쫓아 내시는 하나님

이슬을 머금은 백합 · 호세아 14장

2020. 7. 13.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9장 강해 설교

호세아 9:10-17 하나님 기뻐하시는 십대 소녀에서 더러운 창녀로 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은 나무 같이 만드시고 그 모든 열매들도 다 죽게 하시며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 떠돌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섞어서 음란하게 섬기고 그 결과 얻은 화대를 가지고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쫓아내시고 멸하실 것이다. 그런 말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 했다. 이제 우상에게 몸을 드린 가증한 백성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버리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0절은 옛적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했고 이스라엘 조상 보기를 무화과 나무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본 것 같이 했다고 했다. Garrett은 사막에서 포도열매를 발견하는 것은 사막을 여행하는 베드윈들에게는 진짜 잔치이고 봄철에 무화과 첫 열매도 고대인들에게는 특별히 맛있는 것이고 했다(Garrett, 198). 고대에는 오늘날처럼 저장하는 기술도 없고 멀리 운반할 수도 없었기에 제철에 만나는 과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꽃 같은 13살 소녀 같을 때는 그렇게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만난 포도 같고 무화과 나무 첫 열매같이 달콤하고 풋풋한 이스라엘은 10절 뒷부분에서는 가증한 우상인 바알과 잠자리를 하는 더러운 여인의 그림으로 바뀐다. Chisholm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수기에서 브올에 있던 세대들처럼 그들 역시 다산의 축제에 참여했다고 말한다(Chilholm, 1399). 민수기 25:1-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잠자리를 하고 바알에게 제사를 드린 내용이 나온다. Fausset은 이 모압 여인들이 바알신을 섬기던 젊은 창녀들이라고 말한다(Fausset, 490). Garrett은 바알브올이 사해 북동쪽으로 12마일(20km) 떨어진 곳의 모압 평지에 있던 바알 사당이 있던 곳이라고 말한다(Garrett, 199). 첫 열매와도 같던 이스라엘이 이제 바알 신과 합하는 더러운 창녀와도 같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사랑하는 우상과 같이 가증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11절은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같이 날아간다고 했다. 에브라임의 영광이란 일차적으로 수많은 자손들을 뜻한다(Butterworth, 775; Chisholm, 1399; Fausset, 490).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다. Garrett은 물질과 권력과 자손들이 떠나는 것이지만 문맥은 여호와 자신이 떠나는 것이라 했다(Garrett, 200). 본문의 문맥은 분명히 자손들이 없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결국 여호와께서 떠나시는 것이지만 초점은 자손들에게 있다. 새처럼 날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세가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이다. 해산이란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고 큰 기쁨이다. 아이를 배는 것은 배가 부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해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Fausset은 임신하는 것이란 말이 처음 수정된 때를 가리킨다고 말한다(Fausset, 490). 하지만 그러한 개념은 의학이 발달한 현대적 개념이고 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임신하는 것이란 임신이 되었지만 아직 배는 부르지 않은 임신 초기 상태를 가리킬 것이라고 본다.

12절은 혹시 자식을 기르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사별하게 하시되 하나도 남기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만 죽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내가 저희를 떠나는 날에는 저희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는 말은 사무엘상 4:21절에서 엘리의 며느리가 나은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는 데서도 나온다. 언약궤를 빼앗기고 나라도 빼앗기고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뜻이다.

13절은 여호와께서 떠난 뒤 그들에게 미치는 화가 무엇인지 설명한 것이다.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지만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 끌어낸다고 했다. 에브라임이라는 여인은 이제 아이를 낳지 못하고 낳은 자식도 죽게 되었다. 그런데 남아있는 자식들마저 살인하는 자들에게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Garrett은 두로와 페니키아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며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고 그들을 따라 자녀들을 희생제물로 드렸을 것이라고 말한다(Garrett, 201-02). 두로처럼 에브라임도 그 자녀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14절은 이러한 그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무슨 벌을 그들에게 주시렵니까? 라고 물은 뒤 유산하는 자궁과 젖이 나오지 않는 가슴을 달라고 간구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유산하는 자궁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저주이다. 설사 아이를 낳는다 해도 젖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날은 분유를 먹이면 되지만 고대에는 아이가 죽게 되는 저주이다. 따라서 뱃속에서 죽어 나오거나 태어난 뒤 젖을 먹지 못해 죽게 해 달라는 간구이다.

15절은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워했다고 했다. Stuart는 길갈이 바알브올에서 요단강을 건넌 곳에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바알브올에서 음란하게 바알을 섬김으로 망했었다. 그런데 호세아 시대의 사람들은 바로 그 건너편인 길갈에서 똑같은 죄악을 범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말은 음란하게 간음하는 것을 뜻한다. 조상들은 요단강 건너 모압 땅인 바알브올에서 간음을 했지만 이제 호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인 약속의 땅에 건너와서 간음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내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한 것이다. 이는 마치 바람난 여인이 정부를 자기 집으로 끌어들여 간음을 하는 모습과도 같다. 그것을 본 남편이 그 여인을 쫓아 내면서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집에서 쫓아내시는 것을 간음한 아내를 그 집에서 쫓아내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15절 끝에 덧붙인"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라는 말은 모든 그들의 왕자들은 반역자들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왕자들이라는 말은 "사레헴" 이고 반역자 라는 말은 "소레림"으로 비슷한 발음인 언어 유희이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지도자들은 간음하고도 대드는 아내와 도 같은 모습이다.

16절에서 개역은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라고 번역한 것을 개역개정은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라고 바꾸었다. 에브라임을 나무로 비유한 것이기에 쳤다는 말은 새번역처럼 도끼로 찍었다는 뜻이다. 개역이 원어 그대로 직역한 것을 개역개정은 엉뚱하게 "매를 맞아" 라고 바꾸어 번역해서 나무를 찍는 그림을 지워버렸다. 개정하던 사람들이 비유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도끼로 나무 뿌리를 찍어버렸기에 나무는 그대로 서 있지만 말라버린 모습이다. 그래서 죽은 나무가 되었기에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신다는 것이다. 이는 열매가 많이 맺은 나무의 뿌리를 도끼로 찍어버렸기에 나무에 매달려 있던 열매들이 나무와 함께 다 말라 죽은 그림이다.

17절은 앞에서 죽은 나무의 비유로 말한 것을 결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다는 것이다. 그 백성들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떠도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호세아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 백성들이 듣지 않기에 호세아의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셨다는 것이다. 15절에서 간음한 아내를 집에서 쫓아내는 비유를 여기서 다시 설명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간음한 여인과도 같은 이스라엘은 간음하고도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여인과도 같다고 말한 것이다. 영적인 간음이란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하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푸닥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말씀에서 간음과 반역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라고 했기에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사는 것이 영적인 간음이다.

차라리 믿음에서 아예 떠나 절에 가든지 무당을 찾아가서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간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아예 이혼한 여자나 남의 여자가 어떤 남자와 살든 그것은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것을 따라 살기에 간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을 통해서 책망하신다. 사랑하는 자녀이고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책망하는 것이지 남이라면 책망할 일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아내이지만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산다면 부모에게 대드는 아들이고 간음한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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