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9:1-9 하나님과 세상을 섞어서 음란하게 섬기고 그 결과 얻은 화대를 가지고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쫓아내시고 멸하실 것이다. 그런 말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은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며 이웃나라들을 돈을 주고 사오며 자신들의 손으로 지키려 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불태우실 것이라 했다. 이제 이런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로 쫓아 보내셔서 보복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새번역과 개역이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새번역은 NIV를 따라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이방백성들처럼 좋아 날뛰지 말아라" 라고 두 문장으로 번역했다. 이는 NIV가 칠십인역 구약성서를 따라 두개의 독립된 절로 번역한 탓이다. 히브리어 원어는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인처럼 뛰놀며 기뻐하지 말아라" 라는 뜻이다. 개역은 원어처럼 한 문장으로 번역하기는 했지만 원어는 "기뻐 뛰놀지 마라" 가 아니고 "뛰놀며 기뻐하지 말아라" 라고 해야 한다. 뛰논다는 말은 본래 빙빙 돌면서 춤을 춘다는 뜻이고 이방인들의 축제의 장면을 표현한 그림언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신을 섬기는 예배에 참석해서 빙빙 돌면서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는데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해야 하고 바알신을 예배하며 바알신 안에서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왜 이렇게 바알신 안에서 기뻐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네가 음행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라는 말은 "네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 창녀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몸을 파는 것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과도 같다. 또 모든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했다고 했다.
모든 타작마당이라고 했기에 한집만 간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타작마당에서 바알신을 경배하며 춤을 추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바알신을 음란하게 섬겼다는 것이다. 음행의 값이란 창녀의 잠자리 값이다. Garrett은 음행의 값이란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섬기는 예배에 참석하고 얻은 두가지 이익인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증과 농사가 잘되는 것 두가지라고 했다(Garrett, 191). 바알신을 경배하며 춤을 추는 것은 바알신을 경배할 때 성관계를 갖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간음을 할 수 있고 농사까지 잘된다고 하니 꿩 먹고 알먹기라며 기뻐했던 것이다.
2절은 이스라엘이 그러한 꿩 먹고 알 먹기를 기뻐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 타작마당과 포도주 짜는 틀이 그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타작마당과 포도주 짜는 틀은 1절에서 성관계를 하던 장소이다. 포도주 짜는 틀은 포도주 뿐만 아니라 올리브를 짜는 곳이기도 했다. 수확하여 탈곡한 곡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높은 곳에 있는 바위에 판 구덩이에 포도를 넣고 흥겹게 노래하며 맨발로 밟으면 낮은 곳의 바위 구덩이로 포도즙이 흘러 내린다. 이렇게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남의 타작마당에서 받은 이스라엘은 창녀 짓한 값을 받은 것이다. 그것으로 먹고 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새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포도를 수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3절은 이제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땅은 여호와의 재산이고 여호와의 집이다. 이제 창녀 짓 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은 그 집에서 쫓겨난다는 것이다. 어디로? 에브라임은 이집트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 이는 출애굽한 구원의 역사와는 반대방향이다. 이제 구원 받기 이전 멸망의 때인 이집트의 노예살이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 앗시리아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나 앗시리아로 갈라져서 간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 노예살이를 하며 이방 나라를 떠돌기에 율법에서 금지된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된다는 뜻이다. 창녀 짓을 하고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창녀가 받는 선물을 기뻐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약속의 땅을 잃게 되는 것이다.
4절은 그렇게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노예살이를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것은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한다. 부정한 땅에 사는 부정한 자들이 되었기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또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다고 했다. 이는 장례식에서 부정한 시체와 접촉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뜻한다. 거룩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먹으면 거룩해지지만 반대로 장례식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부정해질 뿐이다. 그들의 떡은 자기들 목구멍에 넣는데 만 쓸 수 있을 뿐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창녀같은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부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5절은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과 관련하여 섬기던 여러가지 절기들을 뜻한다. 명절날과 절기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부정한 사람들이 되었으니 하나님께 제사드릴 자격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빠진 명절이나 절기는 마치 한국 사람들이 차례를 지내지 않는 추석과 설 같은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6절은 명절에 모이는 것과 반대의 그림이 그려진다. 6절은 "왜냐하면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기쁨의 축제 대신 준비된 것은 멸망이다. 저들이 멸망을 피해 도망갈지라도 이집트는 저들을 모은 다는 것이다. 이는 축제를 위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다 죽이기 위해 모으는 것이다. 멤피스는 저들을 땅에 묻는다고 했다. 모아서 다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이 소유한 귀한 은은 잡초들이 갖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빈 텐트는 가시덩쿨이 주인 노릇하고 차지한다는 것이다. 5절에서 명절을 위해 모이지 못한 것이 6절에서는 죽음을 위해 모이게 되고 다 멸망한다는 것이다.
7절은 형벌의 날이 이미 완전히 왔다는 것이다. 완료형으로 이미 과거에 왔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Dearman은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을 과거형으로 말한 것이다(Dearman, 242). 이미 완전히 정해진 일이기에 호세아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선지자는 어리석었다고 말한다. 선지자는 바보라는 뜻이다. 또 신에 감동된 자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미쳤다고 했다. Stuart은 미쳤다는 말이 아무 의미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Stuart, 145-46). 바보들과 미친 놈들이 정신나간 소리들을 지껄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죄악이란 판사가 법정에서 죄를 확정하여 선고한 것을 뜻한다. 제사장이 율법에 비추어 보고 죄라고 선고한 것을 뜻한다. 또 원한이란 적대감을 품고 절대로 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남에게 적대감을 품고 미워하며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정에서 죄로 선포된 죄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이 두가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호세아가 돌아오라고 했는데도 호세아에게 원한을 품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호세아에 대한 원한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에 대한 원한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는데 그러한 말씀 때문에 원한을 품는다면 역시 그 사람에게 품은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이에게 원한을 품고 이를 가는 것이다.
8절은 "에브라임은 내 하나님의 파수꾼이냐? 선지자냐?" 라는 질문이다. 호세아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다고 했다. 5:1절에서 나온 새 잡는 그물의 비유가 또 나온 것이다. 그들은 파수꾼이 되어 위험이 닥칠 때 소리를 쳐서 피하라고 알려야 하는데 반대로 몰래 그물을 쳐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 같다는 것이다. 또 호세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위험하다며 회개하라고 파수꾼 처럼 알릴 대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원한을 품었다고 했다. 호세아에게 품은 원한이 곧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죽이겠다고 이를 갈고 달려드는 자들과도 같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음란하게 우상숭배 한다고 말하고 재수없는 예언만 하기 때문이다.
9절은 그들이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했다고 했다. 기브아의 시대란 사사기의 시대이다(Stuart, 146). Dearman은 좀 더 구체적으로 사사기 19-21장에서 강간사건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것을 가리킨다고 말했다(Dearman, 249). 각기 모두가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악한 시기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시기이다.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초점은 선지자인 호세아의 말을 듣지 않고 호세아에게 원한을 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알신을 섬기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정통 유대인을 자처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세상을 겸하여 섬기면서도 자신들은 정통 보수 기독교인을 자처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에 정통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원한을 품고 대적하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가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는데도 자신을 향해 찔렀다며 원한을 품는다면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듣기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자신들이 더 잘 알고 더 높고 더 믿음이 좋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며 자신들이 진짜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섞어서 창녀 짓을 하고 그 받은 화대를 갖고 좋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완전히 망해서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고 더러운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못하고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