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7:8-12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력을 의지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고 이끄는 일에 소홀히 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떨어뜨리셔서 심판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불씨만 남은 화덕처럼 죄악을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되면 활활 태워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화덕의 비유는 뒤집히지 않은 반죽과 어리석은 비둘기의 비유로 바뀌며 이방세력의 도움을 청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을 기소한다.
8절은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했다. 앞에서 나온 빵 굽는 화덕의 비유가 계속 이어지지만 이제 그 초점은 은밀한 반란에서 게으른 지도자로 바뀌었다. 빵 굽는 사람의 임무는 잘 지켜보고 있다가 한쪽이 잘 익으면 뒤집어서 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지도자들은 그 임무를 게을리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빵 반죽이 다 타버렸다는 것이다. 여러 민족과 혼합되는 것과 빵이 타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Garrett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외국의 종교와 정치적 권력과 문화가 유입되는데도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했다는 뜻이라 했다(Garrett, 170).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잘 지켜보고 있다가 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도 빵 반죽은 쳐다보지 않고 전화기로 게임만 하며 딴짓하는 제빵사의 모습과도 같다.
9절도 빵의 비유가 계속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빵이 타도록 그대로 두고 딴짓만 하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의 힘으로 비유된 그 빵을 먹었는데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백발이 무성하다는 말은 백발이 뿌려졌는데도 그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백발은 고대 사회에서 명예의 상징이기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Chisholm과 Dearman은 백발이 뿌려졌는데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국가의 주권을 상실하고 곧 죽어간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Chilsholm, 1395; Dearman, 208). 새번역도 역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깨닫지 못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계속 이어지는 빵의 비유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8절 뒷부분은 8절 앞부분에서 이방인들이 그 빵을 먹어버린 비유와 짝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Garrett은 회색의 곰팡이가 빵 위에 핀 것을 뜻한다고 해석했다(Garrett, 170). Stuart도 전에 위대했던 나라는 상한 빵 조각 같이 되었다고 했다(Stuart, 121). 더구나 무성하다는 말은 뿌려졌다는 뜻이기에 빵 위에 여기저기 뿌려진 곰팡이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본다면 Garrett과 Stuart의 해석은 문맥과 잘 어울린다. 이방인들이 먹다 보니 밑에는 타고 위에는 설익어서 내버린 것이다. 그 버려진 빵에 곰팡이가 피어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관심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절은 이렇게 빵 굽는 자의 비유로 말한 이스라엘의 죄를 재판하는 모습이다. 10절 앞부분은 5:5절 앞부분과 똑같다. 이 부분은 법정에서 이스라엘이 피고로 고소를 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개역은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라고 해서 증거라는 법정용어를 남겨 놓았는데 개역개정은 본문의 비유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를 삭제해버렸다. 새번역은 원어의 의미를 살려 "이스라엘의 교만이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라고 번역했다. 이부분은 새번역이 옳게 번역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소를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청해야 옳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교만하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이스라엘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1절은 빵의 비유에서 갑자기 비둘기의 비유로 바뀐다.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곰팡이 난 빵처럼 버려졌는데도 알지 못하고 법정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어리석기가 마치 비둘기 같다는 것이다. Dearman은 비둘기가 당시 흔한 새였고 덫을 설치하고 먹이를 놓아도 아무런 경계심없이 먹이로 달려가서 아주 잡기 쉬운 새였다고 말한다(Dearman, 210). 어려움에 처하자 이집트와 앗시리아를 찾아가지만 이는 마치 덫 아래 뿌려진 곡식과도 같은 것이다.
12절은 이집트와 앗시리아를 향해 달려가는 비둘기의 비유가 새 그물에 걸리는 모습으로 비유된다. 여호와께서 그물을 쳐서 하늘의 새처럼 떨어뜨리신다는 것이다. 전에 그들의 회중들에게 들려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전에 그들의 회중들에게 들려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회중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이미 심판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경고하신 대로 그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포로로 잡혀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함이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만 의지 않고 이집트와 앗시리아에게만 의지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계속해서 존경받는 자리에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다. 이방 종교들이 스며 들어오고 있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고 이방인들의 힘과 문화가 스며들어오고 있는데도 그대로 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비둘기와도 같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지도자는 물론 본인을 포함한 목회자들이다. 그러나 목회자들 만이 지도자가 아니다. 평신도들 중에서 말씀을 깨닫고 깨어 있는 성도라면 모두가 다 지도자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 혼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권력과 재물과 명예가 교회를 지배하는 것이고 교회도 세상과 똑같이 그렇게 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될까? 호세아 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하지 않고 4:11절처럼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서로 친목하여 단합하는 공동체만 만들려 한다면 반드시 곰팡이 난 빵이 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절대로 세속화의 물결에 뒤섞여 허우적거리지는 않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간직하고 산다면 절대로 곰팡이 핀 빵처럼 되지는 않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향해서만 달려가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물을 쳐서 라도 막아 주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는 고난을 통해서라도 깨달을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난을 겪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않고 세상 욕심을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돌아서야 한다. 본인부터 그 사명을 깨닫고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먼저 깨달은 자들이 이 사명을 깨닫고 함께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