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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6:7-9

Dawn Word

호세아 6:7-9

율법을 어기고 사람들을 죽여 하나님께 반역한 이스라엘 사람들

이슬을 머금은 백합 · 호세아 14장

2020. 7. 4.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6장 강해 설교

호세아 6:7-9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반역을 했고 일반 백성들은 도피성에서 원수를 갚고 심지어는 제사장들도 도피성가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사람들을 죽였다.

이전 말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으로 협박하신 것은 하나님을 향한 한결 같은 사랑과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길 원하시는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그들의 죄악을 고발한다.

7절은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고 했다. Garrett은 아담이 길르앗과 세겜과 병행을 이루고 "거기서" 라는 말이 있기에 첫 사람 아담이라기 보다는 도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며 첫 사람 아담과 지명을 모두 포함하는 말놀이라 했다(Garrett, 162). 대부분 주석가들은 아담이 도시명을 가리킬 것이라고 말한다(Butterworth, 772; Chisholm, 1394; Dearman, 198).

Garrett의 견해처럼 지명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첫 사람 아담의 범죄도 생각나게 하는 말놀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기서 여호와께 반역을 했다는 것이다. Butterworth는 아담이 여호수아 3:16절에서 요단강 물이 끊어지고 강을 건넌 곳이라며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이라고 한다(Butterworth, 772).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처음 요단강을 건널 때부터 여호와께 반역하기 시작하여 호세아 시대까지 계속되었다는 뜻이 된다.

8절은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성읍이라고 했다. 길르앗은 도시명이 아니라 지역명이기에 대부분 주석가들은 길르앗이 열왕기상 4:13절에 나오는 요단강 건너편 얍복강 남쪽의 "길르앗 라못" 일 것이라 말한다(Chisholm, 1394; Fausset, 480; Garrett, 479; Stuart, 111). Fausset은 길르앗 라못이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갓 지파의 도피성이라고 말한다(Fausset, 480). 도피성이라면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그곳으로 피하면 보복하는 자들이 죽일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곳에 피의 발자취가 가득 찼다고 했다. 도피성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어기고 살인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피성이 행악자의 고을이라 불리우게 된 것일 것이다.

9절은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한다고 했다. 세겜이 열왕기상 12:1절에서 르호보암이 왕관을 쓴 곳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겜은 창세기 34장에서 세겜 족속이 디나를 강간한 사건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족속을 속여 학살한 장소이다. Garrett은 제사장 무리의 조상인 레위가 세겜 족속을 학살한 그 길목에서 제사장의 무리가 강도 떼처럼 매복해 있다가 살인을 한다고 했다(Garrett, 164). 그렇다면 이는 8절에서 도피성에서 피의 발자국이 가득한 것보다 훨씬 더 악한 죄이다.

Chilsholm은 제사장들이 강도처럼 매복해서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거짓 가르침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을 가리키는 과장법이라고 말한다(Chisholm, 1394). 그러나 Fausset은 세겜이 또 다른 도피성이라며 도피성으로 가는 길목에 숨어서 도피성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한다(Fausset, 480). 제사장들은 도피성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인데도 사람들의 부탁이나 돈을 받고 이곳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죽였을 가능성도 있다. 제사장들은 이들이 죽을 죄를 지었기에 도피성에 피할 수 없다는 명분을 가지고 율법에 따라 처단하는 것처럼 해서 죽였을 것이다.

아담에서 길르앗 라못을 통해서 세겜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점층법으로 표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요단강을 건너던 곳에서부터 반역을 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해주신 도피성에서 보복 살인을 하고 심지어는 제사장들까지도 도피성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도망자들을 율법에 따라 죽을 죄를 지었다며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는 7절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반역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들의 뜻과 감정과 이익을 때라 행동하는 것이 여호와께 반역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살인을 하지 않으니 여호와께 반역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 안된다. 크든 작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어기고 자신들의 감정과 이익을 따라 행동하면서도 말씀을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나님 말씀으로 합리화를 시키면 그것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도 자신은 말씀을 따라 산다고 거룩한 척은 하면서 원수는 미워하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들만 사랑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성경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하고 자신의 원수들에게 분노를 터트린다면 오늘 말씀에 나오는 도피성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나 도피성의 길목에서 사람을 죽이는 제사장들과 똑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분노는 살인이라고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회개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죽도록 싫어도 하나님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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