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5:8-15 하나님께서는 양각나팔과 트럼펫과 목소리로 경고하시고 살이 썩고 뼈가 썩는 고통으로 경고하시며 사자에게 물려가는 고통을 통해서도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우상숭배라는 덫과 그물과 함정을 설치한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한 그 백성들은 완전히 망할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에브라임과 유다를 함께 말하며 경고하고 있다.
8절은 기브아에서는 뿔나팔을 불고 라마에서는 나팔을 불고 벧아웬에서는 소리쳐 외친다고 했다. 이 도시들은 모두 예루살렘 북쪽의 높은 산지에 있다. 뿔나팔은 양의 뿔로 만든 것으로 목동들이 위험을 알릴 때 쓰던 것이다. 적이 쳐들어오는 모습은 멀리 나가 있는 목자들이 제일 먼저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팔은 금속으로 만든 것으로 뿔나팔보다 전쟁터의 군인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높은 망대에서 감시하던 군인이 금속으로 만든 나팔을 부는 것은 적이 진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이다. 마지막으로 말로 소리쳐 외치는 것은 전령들이 달려가서 전쟁의 위급함을 말로 알리는 것이다. 위험이 점점 다급해지고 그 위험의 강도도 점점 세지는 모습이다.
이 세 도시는 모두 베냐민 땅에 있는 도시들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산길을 따라 진군하는 길이다. 기브아가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라마이고 마지막에 나오는 벧아윈은 "사악한 자의 집" 이라는 뜻이다. Dearman은 벧엘을 경멸적인 태도로 부르는 말이라 했다(Dearman, 181). 적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베냐민 땅으로 공격해 온다는 뜻이다.
9절은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들에게 짓밟히고 완전히 파괴되는 장면이다. 이는 8절에서 나온 세차례의 경고가 실제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또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 이러한 심판이 확실히 있을 것을 알렸다는 것이다. 10절은 유다의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다고 말한다. 권세를 가진 지도자들이 힘없는 백성들의 땅을 빼앗기 위해 경계표를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를 물같이 부으신다는 것이다. 9-10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이나 남왕국 유다나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적들의 발에 짓밟히게 하신다는 뜻이다.
11절은 에브라임이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다고 했다. 학대를 받는다는 말은 누른다는 뜻이다. 압제를 받는다는 말은 그 누르는 강도가 더 세져서 부러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적군의 발에 눌리다가 뼈가 부러져 버리는 장면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하고 그 명령을 따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웃나라 왕들의 명령에 따르며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이웃 나라들은 발로 밟아 살이 터지게 하고 뼈를 부숴버리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뜻이다.
12절은 11절에서 적군에게 짓밟혀 뼈가 부숴진 사람의 그림과 연결되는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다고 했다. Garrett은 좀 같다는 말에서 좀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에 있는 구더기를 뜻할 수 있다고 했다(Garrett, 153). 따라서 11절에서 적군에게 짓밟힌 상처가 곪아서 구더기가 파먹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다고 했다. Dearman은 썩는다는 말이 뼈들이나 나무에 적용되는 표현이라고 했다(Dearman, 185). 뼈를 썩게 한다는 표현은 잠언 12:4절과 14:30절에서 나온다. 따라서 이는 11절에서 적군에게 짓밟혀 뼈가 부러진 사람이 뼈 속부터 곪아서 썩는 모습이다.
13절도 역시 11-12절에서 짓밟혀 겉으로 난 상처에는 구더기가 파먹고 더 세게 짓밟혀 뼈까지 부러져 속에서부터 곪고 썩는 장면과 연결되는 것이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닫는다는 말은 구더기가 파먹는 상처를 뜻한다.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닫는다는 말은 뼈가 부러져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자 북왕국을 뜻하는 에브라임은 앗시리아의 도움을 받으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그가 그 구더기 파먹는 상처를 고치지 못하고 뼈가 부러져 썩는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14절은 여호와께서 에브라엠에게는 사자와 같고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 같다고 했다. 젊은 사자는 힘이 세기에 뼈까지 다 부숴뜨리며 뜯어먹는다. 이는 에브라임은 겉으로 난 상처를 구더기가 파먹는다고 한 것과 유다는 뼈가 부러져 속에서 썩는다고 한 것과 역시 짝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보다 남왕국 유다에게 더 심판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먼저 여호와께서 움켜간다는 말은 일단 찢은 뒤 그 조각을 가져가는 모습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나이가 든 사자가 힘이 부족하기에 찢어서 부분만 가져가는 것처럼 하신다는 것이다. 남왕국 유다에게는 힘이 센 젊은 사자처럼 통째로 물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건져낼 자가 없다는 것이다.
15절도 사자의 비유가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사자처럼 북왕국 이스라엘 일부와 남왕국 전체를 물고 멀리 가시는 모습이다. 북왕국은 부분적으로 찢겨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남왕국 유다는 통째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자처럼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들이 회개하여 여호와를 간절히 찾기를 기다리신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경고가 목동의 뿔나팔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의 트럼펫으로 또 다급하게 외치는 전령의 목소리로 그 긴장감이 더해졌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받는 상처도 구더기가 겉에서 파먹고 뼈가 속에서부터 썩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시작하여 사자에게 찢겨 물려가고 젊은 사자에게 통째로 물려가는 장면으로 그 고난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멸하시지 않으신 것이 오늘 말씀에 나타난 은혜이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렇게 말로 알리고 고난으로 알리고 다른 곳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의지하며 세상 풍조에 떠내려갈 때에도 역시 경고의 강도를 점점 높여 가시다가 안되면 고난을 받게 하시고 견디기 힘든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이다. 구더기가 파먹고 뼈가 썩는 고난을 받을 때 회개하고 돌아서도 늦지는 않는다. 완전히 몸이 찢기거나 몸 전체가 물려갈 때에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에서 돌아서서 하나님만 의지할 지 결정해야 한다. 말로 경고할 때 듣는 것이 구더기가 파먹고 뼈가 썩을 때 듣는 것보다 낫다. 구더기가 파먹고 뼈가 썩을 때 듣는 것이 몸이 찢기고 사자에게 물려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은 뒤에 듣는 것보다 낫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자. 그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그것이 벌을 주시면서도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시며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