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5:1-7 우상숭배라는 덫과 그물과 함정을 설치한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한 그 백성들은 완전히 망할 것이다.
이전 말씀은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서 끌고 가려해도 따라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경고하고 고소하며 징벌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1절은 세 그룹의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먼저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이다. 제사장들에게는 들으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들으라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통해 들은 경고를 모든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제일 먼저 경고한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집으로 표현된 일반 백성들의 대표자들 즉 사회 지도자들이다. 이들에게는 귀를 기울이라 했다. 이는 경고의 차원을 지나서 법정에서 고소하는 고소문을 낭독하는 장면이다. 셋째 왕의 집은 정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이미 확정된 징벌을 낭독하는 장면이다.
이 세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순서대로이다. 먼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면 백성들의 대표들에게 전해지고 백성들의 대표는 왕에게 상소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최종 징벌의 선고를 전달하는 것이다. 1절 뒷부분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왜 정치 지도자들에게 최종 징벌이 선고되는지 설명한다.
이들의 죄도 세단계의 그림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1절 뒷부분에 나온 미스바의 덫이다. 덫이란 들짐승이나 날짐승들을 잡는 작은 도구이다. 미스바는 사무엘상 10:17절에서 사무엘이 백성들을 불렀던 장소이다. 미스바의 덫이란 왕족들이 그곳을 우상숭배의 장소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둘째로 다볼의 그물은 덫보다 더 넓게 덮치는 도구이다. 둘째 다볼은 사사기 4:6절에서 드보라며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명을 데리고 가라고 한 산이다. 다볼의 그물도 역시 우상의 장소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덫은 작은 우상숭배의 장소이고 그물은 좀 더 큰 우상숭배의 장소일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는 2절 앞부분에 나오는 깊은 웅덩이이다. 셋째는 싯딤의 깊은 구덩이이다. 반역자로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로 싯딤인데 RSV는 싯딤이라고 지명으로 번역했다. 문맥으로 볼 때도 싯딤은 반역자라기 보다는 지명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다수의 주석가들도 역시 싯딤을 지명으로 해석했다(Dearman, 170-71; Garrett, 142; Stuart, 91). 싯딤은 민수기 25: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벌이기 시작한 장소이다.
미스바는 동쪽이고 다볼은 서쪽이고 싯딤은 사해 건너편 남동쪽이다. 이 세 장소를 언급한 것은 우상숭배가 온 나라에 만연하게 한 것이 이러한 지도자들의 죄라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온 나라에 우상숭배의 장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 세 종류의 지도자들 모두를 징벌하신다고 한 것이다.
3절은 에브라임은 안다고 했다. 안다는 말은 배워서 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악한 행동을 이스라엘의 조상 때부터 오랫동안 보고 들으셔서 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숨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저들의 죄악의 현장을 하나님께서 직접 목격하셨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그 현장도 직접 목격하셨다는 뜻이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니 북왕국 이스라엘을 말을 바꾸어 말하며 저들의 죄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에브라임은 행음을 했다고 했는데 행음이란 창녀짓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이 창녀짓하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뜻이다. 또 이스라엘은 이미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더러워졌다는 말은 부정해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완전히 부정해져서 더 이상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4절은 이렇게 더러워진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거나 하나님께서 정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데 그들이 계속 그렇게 음란하게 행동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음란한 마음이 그들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음란한 마음이란 음란한 영이라는 뜻이다. 음란한 마음이란 단순히 성적인 생각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우상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에 음란한 우상들이 가득 있기에 그 우상들이 저들의 마음을 가려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5절의 교만은 앞에서 말한 종교 지도자, 사회 지도자, 정치 지도자들의 교만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리로 높였기에 하나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른 신앙이나 도덕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Stuart는 그들의 거짓 예배와 사회적 불의로 여호와의 법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Stuart, 93).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함께 넘어질 것이라고 했다.
6절은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라고 했다. 이는 한 장의 만화와도 같은 장면이다. 본래 제물 한 마리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가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 마리가 아니라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와도 여호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저들을 완전히 떠나셨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양과 소의 좋은 것들은 남겨 두어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했다. 15:22절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했다.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시기에 마음이 없는 제물은 필요가 없으시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가지고 와도 그 마음에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7절은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백성들에게 덫과 그물과 함정을 설치해서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해서 모두가 다 음란한 우상의 자식들이 되게 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킨다고 했다. Fausset은 일년이 아니라 한 달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일 것이라고 했다(Fausset, 475). 한달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라면 만기는 금방 돌아온다. 채권자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모든 토지와 집과 노비들까지 다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Garrett은 새 달이란 문자적인 의미는 달이 보이지 않는 때라고 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의 상징으로 달이 어두운 때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Garrett은 새 달이 종말론적 어두움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Garrett, 147).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모든 것을 다 멸망시킨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Stuart는 법적인 위협인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Stuart, 94). Stuart도 법적 절차에 따라 채권회수를 하는 집행관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심판은 신명기 28:30-33절에 나온다. 약혼했지만 다른 남자가 동침하고 포도원을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먹고 소를 잡았으나 먹지 못하고 토지 소산과 수고로 얻은 것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 먹는다고 했다. Stuart는 이를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정복한 사건으로 본다(Ibid., 95).
본문에 담긴 일차적인 그림은 Fausset나 Stuart가 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Already but not yet 이다. 이미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는 또한 Garrett처럼 종말론적인 심판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번영신학으로 잘못 가르치고 기복신앙으로 인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덫과 그물과 함정을 만들어 놓은 지도자들에게 더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