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4:15-19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서 끌고 가려해도 따라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은 일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남녀노소 모두가 다 물질적 축복을 위해 우상의 신전에 가서 음행을 하니 그들 뿐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모두가 망할 것이라 했다. 오늘 말씀은 북왕국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내용이다.
15절은 "이스라엘아! 너는 창녀처럼 놀아도 유다에게는 죄를 범하게 하지 말아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창녀짓에 유다도 물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세가지 경고는 점점 더 커져가는 죄에 대한 경고이다.
먼저 길갈로 가지 말라고 했다. 길갈은 이스라엘의 영적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장소이다. 여호수아 5:4-7절과 10-15절을 보면 거룩한 땅에 들어가기 전 그곳에 진영을 설치하고 광야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다. 사무엘상 10:8절과 15:21절을 보면 사무엘의 때에 희생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그런데 아모스 4:4절과 5:5절을 보면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 Garrett은 그곳에 이방신전이 있어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Garrett, 136).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던 유서깊은 장소가 이제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그곳으로 가지도 말라는 것이다.
둘째로 벧아웬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벧아웬은 본래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벧엘이다. 그런데 그곳이 우상숭배의 중심이 되었기에 "사악함의 집" 이라는 뜻의 벧아웬으로 부른 것이다. 벧엘은 창세기 28:10-19절을 보면 야곱이 꿈에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그렇게 중요한 자리가 이제는 우상의 집이 있는 곳이 된 것이다. 그곳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셋째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고 했다. 길갈로 가서 우상숭배를 하고 벧엘에 올라가서 우상숭배를 한 자들이 말로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를 하는 것은 최고 더러운 위선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6:13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라" 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도 역시 세단계로 되어 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고 둘째는 여호와를 섬기면서 셋째는 그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라는 것이다. 신명기 6:14절에서는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길갈에 가서 다른 신들을 경외하고 벧엘에 올라가서는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니 더럽고 가증한 외식인 것이다.
16절은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다는 것이다. 주인이 끌고 가려고 할 때 뒤로 버티고 따라오지 않으려는 암소와 같다는 뜻이다. 소가 뒤로 버티면 주인은 끌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뒤로 버티는 암소와 같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끌고 가려는 것은 넓은 들의 푸른 초장에서 먹이려고 끌고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안 따라온다고 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하고 하신 것이다.
17절에서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 뒤로 버티던 암소같던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했으니 이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는 매춘부와 연합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음란하게 우상들과 연합을 했다는 뜻이다. 이미 매춘부와 연합해서 더러워진 이스라엘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 더러운 관계를 하며 살게 두라는 것이다.
18절은 17절에서 매춘부와 연합하는 그림이 계속 이어진다.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을 했다는 것이다. 우상의 신전에서 우상에게 경배를 하고 그곳에서 우상에게 드린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인 뒤 우상의 신전의 여제사장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들의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한다고 했다(개역).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히브리어 맛소라 성경이 연결이 잘 안되기에 따르지 않고 70인역 구약성서를 따라 방백이란 말을 삭제하고 번역한 것이다.
방백이란 방패라는 뜻이다. Garrett은 방패라는말이 "그녀의 방패" 라고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고 이 방패는 여신을 뜻한다고 했다. 따라서 여신들은 그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사랑한다 라는 뜻으로 보았다(Garrett, 139). 그러나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방패라는 말을 그들의 지도자들이라고 보았다(Chisholm, 1390; Fausset, 473).
지도자들도 수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두번 반복되어 있다. 이는 진짜로 대단히 사랑한다는 히브리식 표현이다. 백성들의 방패가 되어 백성들을 음란한 우상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지도자들까지도 그렇게 지독하게 부끄러움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19절은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그 날개로 그들을 에워쌌다고 했다. NIV는 이를 "회오리 바람이 이스라엘을 쓸어가 버렸다" 라고 의역을 했다. Garrett은 욥기 26:8절에서 물을 빽빽한 구름으로 싼다는 표현과 연결해서 바람이 물을 가져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구약에서 회오리 바람은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상징한다며 여호와께서 물을 모두 가져가셔서 심판하신 것이라고 해석했다(Garrett, 139).
그러나 Fausset은 예레미야 4:11-12절을 근거로 이 말을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부터 쓸려나가는 것으로 해석했다(Fausset, 473). 예레미야 4:11절은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니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라고 했다. 이어서 12절은 이 바람이 심판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Chisholm도 이구절을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신 것이라고 보았다(Chisholm, 1390). 해석은 조금씩 다르지만 19절은 분명히 음란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끊임없이 반복된 것으로 구약성경은 말하고 있다. 어째서 이스라엘은 그토록 우상숭배를 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우상은 눈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쾌락을 주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우상들은 세상 쾌락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 쾌락을 따라간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세상 영광과 쾌락을 따라 가도록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믿는 자들을 끌고 가시는데 뒤로 버티며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은 오늘날 믿는 자들과 똑같다. 하나님께서 이끄는 곳으로 가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결국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