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3:1-5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대로 음란한 여자를 값을 주고 다시 데려와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거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이 지나면 다시 여호와의 은총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음란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후 광야로 데리고 나가 사랑을 고백하시고 혼인서약을 맺으시고 그 혼인을 신실하게 지키면 영원한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다며 호세아에게도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시기에 호세아는 값을 지불하고 아내를 다시 데려온 내용이 이어진다.
원어에서 1절의 어순은 이렇게 되어있다.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다시 가라 사랑해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시" 라는 말이다. "다시" 라는 말은 세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다시 말씀하셨다" 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말이 호세아에서 7번 더 나오는데 모두 뒤에서 앞에 있는 말을 꾸몄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이 말이 "다시 가서" 라고 번역했다. ESV, NASB는 개역과 새번역처럼 "다시 가서" 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NIV와 NLT는 "다시 사랑하라" 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은 호세아 전체에 흐르는 한결같은 사랑을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된다. 하지만 단어의 위치가 문제이다. 다시 라는 말이 가라는 말을 건너 뛰어 사랑하라는 말을 꾸미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Chisholm과 Patterson은 음란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두고 NIV처럼 "다시 사랑하라" 라는 뜻이라고 했다(Chilsholm, 1387; Patterson, 25). 이들은 원어의 어순이나 문법을 고려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해서 "다시 사랑하라" 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라는 단어를 건너뛰어야 하기에 타당하지 않다. 이들과는 달리 Dearman과 Fausset은 1:2절과 비교하면서 1:2절에서 "음란한 여인을 취하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3:1절에서는 "음란한 여인을 사랑하라" 라고 다시 말씀하셨다고 해석한다(Dearman, 133; Fausset, 467).
Dearman의 해석은 호세아 전체에서 뒤에서 앞의 동사를 꾸민 것을 볼 때 타당하다고 본다. Garrett도 여호와께서 두번째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는 순서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Garrett, 99).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Stuart도 역시 "다시 말씀하셨다" 라고 번역했다(Stuart, 62). 1:2절은 단순히 음란한 여인을 취하라고 했는데 3:1절은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아서 음녀가 된 여인을 취하라고 다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2절은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셨기에 호세아가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사서 데리고 왔다고 말한다. Dearman은 출애굽기 21:32절을 근거로 당시 남자나 여자 노예의 가격이 은 삼십세겔이었다며 보리 한 호멜 반은 15세겔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Dearman, 135). 이는 고멜 자신이 자신의 몸값을 받아 썼기에 호세아는 그 값을 지불해야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전에는 고멜의 아버지에게 신부의 값을 지불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남자에게 그 값을 지불하고 사온 것이다.
이렇게 호세아가 값을 지불하고 고멜을 사온 뒤 고멜에게 한 말이3절에 나온다. 호세아는 고멜에게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고멜이 음행으로 인해 더러워진 것을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둔 것이다. 호세아 자신도 고멜과 함께 살면서 그 기간동안 성관계를 안하겠다는 뜻이다.
Fausset은 신명기 21:10-13절에 나온 적군의 포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아리따운 여자가 있으면 자기 집으로 데려와 한달간 애곡하게 한 후에야 동침할 수 있다는 구절을 근거로 설명한다. 적군의 아내였던 여자이기에 애곡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둔 것일 것이다. 이스라엘도 역시 다른 신들을 오랫동안 섬겼었기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면서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기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Fausset, 467-68). Dearman역시 성생활을 금하고 도덕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Dearman, 136). Garrett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정상적인 부부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Garrett, 102).
4절은 3절에서 비유로 말한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이는 3절에서 고멜이 호세아의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런 부부 관계도 없이 금욕하는 생활을 했다는 것과도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에 돌아왔지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어떤 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5절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 중에 다시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은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Livingstone은 5절의 다윗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Livingstone, 607). Garrett도 여호와와 그리스도를 찾을 때만이 분열된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고 안전은 오는 것이라고 했다(Garrett, 104).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간다고 한 것이다. 이는 음란한 고멜이 다시 남편인 호세아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비유된 것이다. 이제 음란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 조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하며 경배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날이란 메시야의 날을 가리킨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세상 영광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온 고멜과 똑같은 것이다. 고멜과 같이 음란한 우리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로 회복시키신 것이다. 오직 여호와만 경외하며 정결한 삶을 살면서 주님 다시 오시길 기다린다면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 그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