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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2:5-13

Dawn Word

호세아 2:5-13

음란한 이스라엘이 깨닫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하나님

2020. 6. 23.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2장 강해 설교

호세아 2:5-13 하나님은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라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으시고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으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이전 말씀에서는 음란함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다시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간음의 자식들인지를 설명하고 왜 그 어미가 벌을 받았는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5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된다. 이는 4절의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한 간음의 자식인지를 설명한 것이다. 왜 간음의 자식인가 하면 그 어미가 음행 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본문은 고멜이 임신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들과 행음했는지 아니면 다른 남자들과 행음하여 임신했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고멜이 낳은 자식이 누구의 자식인지 의심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Garrett은 호세아의 가족의 자식인지에 관한 의심이 축적되어가는 수사학적 효과를 놓치면 안된다고 했다. 이들이 호세아의 자녀인지 이웃들이 묻는 것처럼 호세아는 여호와가 진짜 우리 하나님인지 혹시 우리는 바알의 자녀들이 아닌지 영적 혈통에 대해 의심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했다(Garrett, 80).

5절 뒷부분도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이는 임신한 그녀가 부끄러운 일을 행했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녀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라고 말했다. 이는 음란한 성관계로 다산을 기원하던 바알 신 숭배의 제사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가리킨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 이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신을 따르면 이러한 이익을 주겠다고 한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6절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가시덤불로 길을 막아서 길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 또 거기에 벽을 세워서 길을 찾기 못하게 하신다는 그림언어이다. Dearman은 가시덤불로 길을 막는 것은 동물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시덤불과 돌로 담을 쌓은 그림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살만에셀 V세가 사마리아를 포위한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고 했다(Dearman, 113). 반대로 Garrett은 이러한 가시덤불은 사나운 들짐승들이 가축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을 했다며 고멜이 등짐승들처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훔치려는 그림으로 설명했다(Garrett, 82). 그러나 Garrett은 가시 울타리와 돌담으로 막은 그림을 잘못 이해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음란한 여자와 같을지라도 보호하기 위해 이방 나라들에게 가는 길을 막아 주셨다는 뜻이다.

7절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담을 넘어서 사랑하는 자들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막으셨기에 이미 멀리 가버린 사랑하는 자들을 정신없이 달려 쫓아가는 그림이다. 그들과 행음을 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대신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려고 그들을 따라가서 그들의 신을 섬기며 그들과 조약을 맺고 그들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보호를 받으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막길을 달려 따라갔는데도 만나지 못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자 그제서야 생각한 것이 본 남편에게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그 때의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화려한 옷과 귀금속과 더 좋은 음식을 얻고자 쫓아 갔는데 얻지도 못하고 생각해 보니 본 남편인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고 먹여 주시던 것이 더 낳았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거짓 신들이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따라갔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누가복음 15:14-18절에 나오는 탕자의 말과도 같다.

8절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인데 도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알을 위해 쓴 금과 은도 하나님께서 크게 늘어나도록 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가장 귀한 금과 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도 바알이 축복을 주는 줄 알고 바알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남편이 사준 5캐럿짜리 다이아 반지와 수많은 보석이 박힌 팔찌를 다른 남자에게 가져다 주고 몸도 주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 우상을 섬기며 우상에게 모든 것 다 갖다 바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9절은 이러한 음란한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기 위해 곡식이 익는 계절에 도로 찾으며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들 시기에 도로 찾는다 했다. 곡식과 포도가 익는 수확의 계절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도 빼앗는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부끄러움을 가리지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Dearman은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벌거벗은 것이 야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고대 셈족 사회에서는 수치로 받아들인 것이라 했다(Dearman, 1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들 앞에 벌거벗은 채로 내 놓아서 야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 아니라 큰 수치를 당하게 하신 것이다.

10절에서 벌거벗은 것의 의미를 분명히 설명한다. 10절은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서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라고 했다. 과거에는 이 여인이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스스로 벌거벗고 그 부끄러움을 드러냈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 사랑하는 자 앞에서 벌거벗은 것은 똑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편이 강제로 벗겨서 그 정부 앞에 세운 것이다. 그런데 그 정부는 이 여인을 남편의 손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Garrett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무능함을 대조한 것이라고 했다(Garrett. 83). 인간은 세상 영광을 따르지만 세상 영광이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구해낼 수 없다.

11절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여인의 그림에서 모든 축제들이 사라진 황량한 땅이 되게 하는 그림으로 바뀐다. 당시 유대교 안에서 즐기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종교와 정치와 사회가 분리된 오늘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Ward는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교회와 학교와 출판사와 극장이 다 들어있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Ward, 31). 따라서 이는 단지 오늘날 교회 문을 닫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서 기쁨을 주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게 한다는 뜻인 것이다.

12절은 그렇게 기쁨을 주는 모든 종교행사들을 어떻게 폐하시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하고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면서 받은 값이라고 생각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신다고 했다.

거칠게 한다는 말은 과일이 열리지 않는 사막의 관목들이 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직 들짐승들이 그 잎사귀를 뜯어먹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가뭄이 들어 모든 과일 나무들이 다 말라 죽어 버리고 대신에 가뭄에 잘 견디는 사막의 작은 관목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13절은 바알에게 희생제물을 드리고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갔던 그 축제의 날들로 인해 그녀을 벌하신다는 것이다.

먼저 희생제물을 드린다는 말은 본래 하나님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야 하는데도 창녀처럼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음란하게 우상 숭배를 했다는 것이다.

나를 잊어버렸다는 말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초점이 바알에게 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남편과 함께 살면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 경우 남편의 이름이나 존재 자체를 잊었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이스라엘도 절대로 하나님을 잊지 않았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바알에게 가 있었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에서 고멜의 음란함을 말한 것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실제로 호세아의 아내가 그랬다면 호세아는 정말 분노했을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그렇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바람난 아내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한 남편은 그 아내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분노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켰어야 옳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끄러움을 드러내시고 이스라엘이 즐기던 기쁨이 사라지게만 하셨다.

이는 아직도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만 섬길 기회를 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잊은 적이 없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멈춘 적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책망하셨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도 예배를 잘 드리고 헌금도 잘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지 아니면 세상 영광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 깨닫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며 우리에게 여러가지 고난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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