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1-4 음란함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다시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셔서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한 음란한 백성들을 다시 뿌리셔서 셀 수도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라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음란 제거하고 회복시키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
1절은 너희 형제들에게는 암미라고 말하고 너희 자매들에게는 루하마 라고 말하라고 하신다. 앞에서는 로암미와 로루하마로 불렀는데 이제 "아니다" 라는 뜻의 "로" 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전에는 내 백성이 아닌 로암미였는데 이제 내 백성인 암미가 되게 하라는 명령이다. 또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이제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이렇게 음란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란을 제거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2절은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고 했다. 논쟁하라는 말은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피고의 죄를 고발하라는 뜻일 수 있다. Fausset는 회당에서 재판하는 장면이라고 했다(Fausset, 462). Butterworth는 성문 앞에서 법적인 논쟁을 벌이는 그림언어라고 했다(Butterworth, 768).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회당이나 성문 앞에서 재판을 하는 장면으로 해석한 것이다. Stuart는 이 장면은 법정 논쟁이지만 이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간음죄를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법적 행동의 목적은 교정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Stuart, 47).
그러나 Garrett은 논쟁하라는 말은 법정에서 고소하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자녀들에게 그 어미의 행동을 거부하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자녀들은 그 어미 호세아를 비난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Garrett, 75). Patterson도 본문의 상황은 법적 재판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벌을 주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라고 했다(Patterson, 18). 사용된 단어는 법적 증언에 관한 말이지만 실제 상황은 호세아가 자녀들 앞에서 그 아내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장면이다.
2절 뒷부분은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고 했다. 음란이란 창녀 짓을 하는 것을 뜻하고 음행이란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간음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Stuart는 이러한 표현은 얼굴의 화장이나 장신구를 제거하고 또 그 가슴에서 장신구를 제거하라는 뜻일 것이라며 바알 신 예배 때 여자들이 착용하는 부적들 같은 것을 뜻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Stuart, 47). Butterworth도 역시 이러한 것들은 창녀들을 나타내는 특별한 형태의 장신구들일 것이라고 했다(Butterworth, 768). Garrett은 이러한 해석들을 제시하면서 얼굴은 인격을 의도한 것이고 가슴은 성적 취향을 대표한 것이라고 해석을 덧붙였다(Garrett, 77). 창녀 짓은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이기에 얼굴에서 제거하라고 했을 것이다. 간음은 은밀하게 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제거하라고 한 것일 것이다.
3절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녀가 태어나던 날과 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성숙한 여인을 벌거벗기는 야한 그림이 아니다. 갓 태어나서 씻겨지지도 않은 아이처럼 되게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벌거벗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스스로 보호할 힘도 없고 탯줄도 안 잘린 채 피와 기름으로 범벅이 된 불결한 모습이다. 또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라고 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지도 않고 광야와 마른 땅에 버려 두는 그림이다. 거기서 목말라 죽게 내버리는 그림이다. Chrisholm은 광야와 마른 땅이라는 표현을 그녀의 생식 능력이 제거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했다(Chrisholm, 1383).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 빼앗고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채로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어 다시 사막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간음하기 위해 스스로 벗은 여인과 같았었다. 스스로 벌거벗고 수많은 우상들을 부끄럽게 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강제로 벗기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막도 잃은 채로 모든 것을 다 잃고 포로로 잡혀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본래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이지 않고 벌거벗겨진 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은 다시 회복시킬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4절은 내가 그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는 로루하마 라는 이름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내 자녀라 하지 않고 그녀의 자녀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음란한 자식들이란 그 어미가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낳은 자식들이라는 뜻이다. 전에도 그 자녀들은 자격이 있어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긍휼을 거두셨기에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음란한 백성들이라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음란을 제거해 버리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내 쫓으신 것이다.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멸하셨어야 옳다. 그러나 이렇게 범죄한 백성들을 벌거벗겨진 채로 모든 것을 다 잃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은 다시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며 살아가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정확히 맞는 말씀이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남자나 여자를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간음이라 부르고 성경에서는 돌로 쳐 죽여야 할 죄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세상도 사랑한다면 역시 하나님 앞에서 돌에 쳐 맞아 죽어야 할 죄인 것이다. 그런 우리를 살려주시고 단지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 것은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던져져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과도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