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0-11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셔서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한 음란한 백성들을 다시 뿌리셔서 셀 수도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취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 하시며 이를 통해서 영적인 간음을 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10절은 창세기 22:1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을 깨고 그렇게 간음을 했어도 하나님 편에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Stuart는 당시 북 이스라엘에는 토지를 가진 백성이 60,000 정도 되었고 총 인구는 북 이스라엘이 400,000명이고 남 유다가 200,000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했다(Stuart, 37). 이는 주변 나라들에 비교할 때 말할 수 없이 적은 수였다. Garrett은 호세아 당시에는 앗시리아가 계속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때였고 이스라엘은 아주 연약한 존재였기에 이러한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웃을 만한 일이었다고 했다(Garrett, 71).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던 말이다. Stuart는 이 말이 전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Stuart, 38). Garrett은 호세아가 전체 이스라엘을 자신의 자녀들과 비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고 했다(Garrett, 71). 호세아 자신의 음란한 자녀들과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렇게 음란한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9절에서는 이런 음란한 자녀들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로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라고 했다.
Andersen과 Freedman은 그곳이 광야를 뜻한다고 했다(Andersen and Freedman, 203).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 때도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음란하게 우상도 섬기고 있어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언약에 따라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수 없이 음란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11절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 올라올 것이라 했다. 우두머리라는 말은 왕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Stuart는 이 말이 왕을 세우기 이전에 지도자에게 쓰인 말이라고 했다(Stuart, 39). Dearman도 이 말이 이것은 한 지파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왕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호칭이라고 했다(Dearman, 105). Fausset은 스룹바벨을 가리킨다며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했다(Fausset, 460). 이미 성취된 일로 본다면 그 땅, 즉 바빌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스룹바벨로 볼 수 있다. 종말론적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1절의 이스르엘은 4절의 이스르엘과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뿌리신 씨앗과도 같다는 것이다. Fausset은 그들이 하나님의 씨앗으로 뿌려질 때 그 날이 대단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Ibid.). Chisholm도 하나님께서 씨앗을 뿌리실 것인데 이스라엘은 싹이 나서 무성하게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Chicholm, 1382). 이제 회복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다시 심으실 씨앗인 것이다.
Garrett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땅에서 올라오는 씨앗이 또한 부활을 암시한다며 구속받은 자들이 지하의 무덤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Garrett, 73).
Garrett은 하나님께서 뿌리신 씨앗이 싹이 트는 모습을 구속 받은 성도들이 부활하는 모습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흩어 뿌리신다는 뜻의 이스르엘이 이제 싹이 터 무덤을 뚫고 나와 부활하는 것이다. Stuart역시 부활을 의미한다고 했다(Stuart, 39). 그렇다면 4절에서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흩어 버리신 것은 결국 씨앗을 뿌리신 셈이다. 이미 성취된 일차적인 의미는 바빌론 포로로 흩어 버리신 것이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와 회복될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종말에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부활하는 그림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4절의 이스르엘과 11절의 이스르엘은 서로 다른 그림 같지만 결국 같은 그림이다. 하나님께서 음란한 백성들을 박살내셔서 가루로 흩어 뿌리셨지만 그것은 결국 완전히 없애고 정결하게 하신 뒤 새로 심으시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길 때도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게 하셔서 다시 뿌리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난을 당할 때 슬퍼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심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요즘 시기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음란하게 섬기는 오늘날 성도들을 흩으시고 다시 심으려 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크게 번영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고 그것이 큰 믿음으로 보면서 잘못된 길로 끌고가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앙서적들이 그러한 성공담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포장되어져서 나오고 있다. 이제 하나님은 완전히 흩어 놓으시고 다시 심으시려고 하신다면 우리는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새로워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뿐이다.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말씀의 참된 뜻을 바로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살다가 땅에 뿌려지는 씨앗처럼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결실이 있어 나중에 주님 다시 오실 때 싹이 트는 씨앗처럼 영광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약 세상 영광을 함께 의지한다면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뿐인 씨앗이기에 완전히 멸망해버리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