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9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취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 하시며 이를 통해서 영적인 간음을 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셨다.
호세아는 기원전 약 753년쯤에 유다 백성들에게 사자로 보냄을 받았다. 유다의 웃시야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대는 번영과 평화의 시대였다. VanGemeren은 당시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번영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아람의 침략으로 잃었던 영토를 되찾았고 상업과 무역은 융성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서 상류층들은 사치와 방종으로 살았고 가난한 자들은 노예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외국 문화를 받아들였기에 하나님께 각종 제사와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앗시리아인의 종교를 따라서 종교적인 매춘이 만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VanGemeren, 176-78).
이러한 시기에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고멜의 불성실한 삶은 이스라엘의 배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태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집을 나가 다른 남자의 품에 있는 그녀를 다시 데려오면서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도 자기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1절은 네 명의 유다 왕들인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이름을 언급한다. 같은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 왕으로 여로보암 II세(기원전 793-753)를 언급한다. 네 명의 유다 왕들 중 웃시야의 통치기간(기원전 792-740)만 여로보암과 겹치고 나머지 세명의 유다 왕들의 통치 기간(기원전 750-686)은 여로보암 II세와 겹치지 않는다. Garrett은 그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호세아는 여로보암 II세를 합법적인 마지막 왕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 이후의 왕들은 왕 자격이 없는 자들 암살과 탐욕으로 왕위에 오른 떼거리들이라는 것이다(Garrett, 42).
둘째 호세아는 유다의 선지자로서 유다는 좀 더 낫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 다 비판하면서도 그는 유다는 이스라엘을 따르지 않기를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 구원과 통일을 고대했기 때문에 북왕국의 나머지 왕들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Ibid., 42). Chisholm도 Garrett의 두번째 이유처럼 북왕국의 나머지 여섯 왕들의 이름을 삭제한 것은 유다의 다윗 왕가의 적통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Chisholm, 1379).
호세아의 아버지 브에리는 마르지 않는 원천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여호와는 나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 아들 호세아는 구원하셨다 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뜻이 된다(Stuart, 21).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연결하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뜻이 된다. 메마른 사막을 방황하며 목말라 죽어가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셔서 구원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7:37-38절에서 자신을 생명의 샘으로 비유하시며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마시라고 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신앙고백을 배경으로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2절에서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hisholm은 음란한 여자라는 표현은 그녀의 결혼 전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그녀가 증명해 줄 상태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음란한 자식들이란 부적절한 관계에서 낳은 자녀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Chisholm, 1379). Stuart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단순히 일반적인 이스라엘의 여인이라고 말했다. Stuart는 음란하다는 말이 복수이기에 직업보다는 행동특성을 나타내기에 매춘녀일 수 없다며 모든 이스라엘이 음란했기에 단순히 음란한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라는 뜻이라 했다(Stuart, 26-27).
그러나 반대로 Fausset은 음란한 자식이란 호세아의 자식들이 아니라 간음을 통해 낳은 자식들을 그 아내와 함께 호세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 어미와 같이 그 자녀들도 영적인 간음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Fausset, 458). Fausset은 2절을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가서 음란한 여자와 음란한 자녀를 취하라"는 뜻이다.
Fausset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3절에서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영어 번역들에서는 자녀들이라는 말에 "have"
라는 동사를 넣어서 아내를 취하고 자녀를 가지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Stuart는 이 자녀들을 고멜이 데리고 왔다고 하거나 어머니의 성적 문란함을 물려받았다고 하거나 호세아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암시도 없다고 했다(Stuart, 27). 따라서 이 자녀들이 누구의 자녀인지 친자 확인을 위한 DNA검사를 하는 듯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분명한 것은 이 여인과 그 자녀들은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한 아내와 자식들을 받아들인 호세아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호세아의 아내와 자녀들은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Stuart도 여호와께서 호세아의 결혼과 자녀들의 이름이 호세아의 상황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타락이 보여주는 끔찍한 진실과 다가오는 멸망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시려는 것이라고 했다(Stuart, 26). 음란한 아내와 음란한 자녀들은 호세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4절에서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시길 그 이름을 "이스르엘(Jezreel)"
이라고 하라고 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이는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심으신다는 긍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가루로 만들어 흩어 뿌리신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다. Stuart는 이 말이 열왕기하 9-10장에 나오는 예후에게 권력을 가져다 준 이스르엘이라는 성읍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을 회상시켜 주는 말일 수 있다고 했다(Stuart, 28). 더구나 바로 이어서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라고 한 것을 보면 예후의 끔찍한 살인과 연관된 이름일 가능성이 더 높다. 원어에서 이스라엘과 이스르엘의 발음이 비슷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스르엘의 피와 이스라엘 족속의 멸망을 연결하는 언어 유희인 것이다.
5절에서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은 이제 성읍이 아닌 골짜기로 부른다. 이 골짜기는 과거 이스라엘이 중요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사사기 4-5장에서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사람들을 무찌른 곳이다. 또 사사기 6-8장에서는 기드옥이 미디안 족속을 패배시켰던 곳이다. 그 날이란 하나님만 아는 장래의 시간을 말한다. 그 날에 그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신다는 것이다. 역시 이스르엘과 이스라엘을 가지고 언어유희로 전달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6절은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며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고 하셨다. 그 의미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함" 이라는 듯이다. 그렇기에 바로 이어서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동안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해 주셨는데 이제 더 이상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7절은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을 통해 구원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Fausset은 이 말이 열왕기하 19:35절에 나온 산헤립으로부터 예루살렘을 기적적으로 구원한 것과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오게 하셔서 회복시키신 것을 예견한 것이라고 했다(Fausset, 459).
8절은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Stuart는 고대에는 보통 세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먹였기에 실제적인 시간의 간격은 5-6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Stuart, 32). 9절에서 그 이름은 "로암미"라고 하라고 하셨는데 그 뜻은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은 내 백성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는 더 이상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우리는 오해하면 안된다. 그들은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함께 섬긴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호세아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문제는 이렇게 함께 섞어서 섬기던 혼합주의가 문제였다. 고멜은 혼합주의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 것들을 동시에 섬기던 고멜의 자녀들 역시 고멜과 똑같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믿는 부모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척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세상 것을 의지한다면 고멜과 똑같은 부모가 된다. 이는 그 자녀들 역시 똑같이 부모를 닮아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 영광도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멜과 그 자녀들은 똑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뜻에 맞게 고쳐서 해석한다. 자기들의 양다리를 인정해 주고 합리화시켜 주는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만 훌륭한 목회자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아니라며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