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25-35 북방 왕은 속임수로 승리하고 노략물을 탈취하겠지만 로마 군의 저지를 받고 수모를 당한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성소를 더럽힐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북방 왕은 교활한 계략으로 사람들을 속여서 기름진 것을 탈취할 것이지만 그의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끝나게 하실 것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북방 왕이 군대를 일으켜 남방왕을 치고 노략할 것이고 거룩한 곳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을 말하고 있다.
25-26절은 기원전 169년 Antiochus의 첫번째 이집트 원정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것이다 Miller는 남방 왕인 이집트 왕이 북방 왕을 당하지 못한 이유를 이집트 왕의 부하들이 충성스럽지 못했고 그의 모사들의 계략도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Miller, 299-300). 26절의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 이란 이집트 왕이 신뢰하는 모사들이다. Miller는 이집트 왕의 모사들이 어리석게도 어린 왕에게 시리아와 팔레스틴을 다시 탈환하도록 촉구했다는 것이다(Ibid., 300). 그 결과 그의 군대들은 흩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22절에서 넘치는 물같이 패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와디를 따라 흘러서 모든 것을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도 Antiochus가 막아서니 물은 흐르지 못하고 둑을 타고 넘쳐서 넓은 들판으로 힘없이 퍼져버리는 그림이다. 결국 어리석은 모사들 때문에 이집트 왕은 죽게 된 것이다.
27절의 이 두 왕이란 남방 왕인 Ptolemy VI세와 북방 왕인 Antiochus IV이다. 이 때 Ptolemy IV는 Antiochus IV의 포로로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 때Ptolemy VII Euergetes가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그래서 Antiochus는 밥상에 앉았을 때 Ptolemy VI에게 왕위를 되찾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함께 밥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서로 해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둘은 서로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속이고 있었다. Antiochus는 왕위를 되찾아 주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이집트 전체를 차지할 속셈이었고 Ptolemy VI는 Antiochus를 이용해서 왕위를 찾은 뒤 결국은 Antiochus를 물리칠 계획이었다. Pentecost도 둘 다 속이고 있었기에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Pentecost, 1369). Fausset도 Antiochus가 Ptolemy VI를 도와서 그의 왕위를 되찾아 주는 척했다고 말했다(Fausset, 448). Ptolemy VI세는 강력한 Antiochus의 힘을 이용하여 도움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고 Antiochus는 이집트를 완전히 자신의 왕국으로 합병하려고 돕겠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Miller는 이들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했다. 전략적 중심지인 멤피스를 탈환하고 Ptolemy VI세를 거기서 왕으로 앉혔지만 Ptolemy VII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다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Miller, 300).
27절 끝부분은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지 아니할 것임이라" 라고 했다. 때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왕과 그의 모든 소유를 망하게 하실 텐데 그 정해진 때가 아직 안되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잠언 16:1절에서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라고 했다.
28절은 Antiochus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는 기원전 169년 Antiochus가 첫번째 이집트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간 것을 뜻한다. 그는 마음대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Fausset은 이 것이 Antiochus는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핍박한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80,000명을 죽이고 40,000명을 노예로 팔았으며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금 그릇 은그릇을 가져가고 돼지를 제단에 제물로 드리며 성전을 더럽혔다고 했다(Fausset, 448). Miller는 그렇게 한 이유가 반란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Miller, 300).
29-30절은 기원전 168년에 있었던 2차 이집트 원정을 말한다. 그러나 2차 원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30절에서 깃딤의 배들이 나오는데 깃딤은 키프로스의 옛 이름이다. Miller는 이집트 왕의 요청에 따라 키프로스에 있던 로마의 군함들이 온 것이라 했다(Ibid., 301). Carpenter는 Antiochus가 알렉산드리아를 탈환하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Antiochus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려고 할 때 이집트의 동쪽에 로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로마의 주된 곡식 공급원이었기에 Antiochus가 이집트를 합병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Antiochus가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할 준비를 마쳤을 때 그는 Popilius Laenas가 이끄는 로마의 사신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로마의 사신은 모래밭에 동그라미를 그린 뒤 Antiochus 에게 들어가라고 명령을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약속하든지 아니면 그 동그라미에서 나와 로마와 전쟁을 준비하든지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Carpenter, 450).
Antiochus는 이렇게 부하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는 예루살렘에 가서 화풀이를 한 것이다. 그래서 31절은 Antiochus가 성소를 더럽히고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외경인 마카비 1서에도 희생제사를 못 드리게 하고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고는 어기면 죽이겠다고 한 것이 나온다(마카비 1서 1:50). 게다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운다고 했다. 이는 제우스 신상을 성전에 세웠다는 뜻이다.
32절은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킨다고 했다. Antiochus의 정책을 따르는 자들을 속여서 배교하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친다고 했다. Fausset은 이것이 마카비와 그의 추종자들을 뜻한다고 했다(Fausset, 449). Miller도 이 말이 마카비 반란을 뜻한다고 했다. 마카비는 여러 차례 게릴라 전으로 승리를 거두고 Antiochus의 군대를 몰아냈다(Miller, 302).
33절은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한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칼로 죽임을 당하고 불로 태워지고 사로잡히고 약탈을 당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순교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Miller는 지혜로운 사람이 영적인 통찰력을 가진 진정한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Miller, 302).
34절은 그들이 몰락할 때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라 했다. Fausset은 도움을 조금 얻는다는 말이 마카비 반란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아주 짧은 것이라 했다(Fausset, 450). 또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라 했다. 진정한 신자들은 핍박을 당하여 순교하지만 Antiochus의 명령에 따라 타협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세상의 통치자가 승리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도 결국 망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의인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분별력 있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핍박을 당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마카비 반란으로 믿는 자들이 승리한 것 같지만 그 기간은 잠깐일 뿐이고 또 다시 핍박은 계속되는 것이다.
Antiochus IV세는 적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져 왔다. 오늘날 세상의 통치자들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적 그리스도의 부하들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자들은 권세를 누리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Antiochus와 타협하여 야합한 신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참된 믿음을 가르치는 자들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을 견디며 참된 말씀을 전하고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광은 일시적이로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은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며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