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9:20-27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급히 가브리엘을 보내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다니엘은 자신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자신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달라고 간구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그 성전과 그 백성들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이다. 이제 오늘 말씀은 다니엘의 기도가 끝나기 전에 바로 응답하신 내용이다.
20절은 9:1-19절에서 기도한 내용의 요약이다. 다니엘이 이같이 말하고 기도할 때이다. 또 이어서 내 죄와 내 백성들의 죄를 고백할 때이다. Miller는 죄가 없는 것이 기도 응답의 조건이 아니라고 했다(Miller, 250). 다니엘의 기도 응답의 조건은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것에 있는 것이다. 응답 받는 기도는 자신과 공동체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다. 그 뒤에 다니엘은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간구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아뢸 때 라고 했다. 회개 이후 다니엘의 간구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해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21절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첫번째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사람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빨리 날아와서 저녁 제사 드릴 때 즈음에 자신에게 왔다는 것이다. 이른다 즉 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가" 인데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만진다는 뜻이다. KJV은 이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여 "thouched me" 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빨리 날아서" 라는 라는 말이 "나를 만졌다" 라는 말을 꾸미고 있기에 "빨리 날아서" 라는 말을 통해 만진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빨리 날아서" 라고 번역된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지침을 지쳤다" 라는 뜻이다. 이렇게 같은 어원의 동사와 명사를 함께 쓸 때는 "매우 지쳤다" 라는 뜻이다. Miller도 이 말은 빠르게 날아왔다는 뜻보다는 대단히 지쳐서 도착했다 라는 뜻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했다(Miller, 250). 이는 왕의 인장반지로 봉인이 된 편지를 들고 달리던 전령의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전하라는 명을 받았기에 완전히 탈진될 만큼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려서 다니엘에게 도착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졌다는 말은 다니엘에게 와서 그 편지를 전달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22절은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라고 했다. 이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과 환상의 의미를 깨닫는 지혜와 총명이다. 그런데 23절에서는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여기서 기도한다는 말은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는 뜻이다. 다니엘이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하나님께 간청을 할 때 즉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이렇게 지치도록 달려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라고 했다. 이상이란 하나님께서 다니엘만 알도록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주신 메시지다. 다른 사람들은 해석하지 못하고 오직 다니엘만 하나님의 편지를 이해하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러 왔다는 뜻이다.
24절에서 일흔 이레라는 말은 70x7 즉 490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490일이 아닌 490년으로 이해한다. Baldwin은 이 부분을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한다(Baldwin, 163). Miller는 이에 대한 몇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첫째 안티오커스 IV세의 핍박이 끝나는 때이다. 기원전 586년부터 계산한다면 성전을 청결하게 했던 기원전 164년이나 안티오커스 IV가 죽은 기원전 163년까지 계산하면 490년에서 한참 모자란다. Miller가 제시하는 또 다른 해석은 490년이 오랜 시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Miller는그리스도의 초림이라고 보는 견해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보는 견해도 소개한다(Miller, 252-57). 이는 490년이 기원전 163년과 맞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24절 뒷부분은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는 안티오커스 IV가 죽고 성전을 다시 정결하게 하여 봉헌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90년은 긴 기간을 상징하는 숫자인 것이다. House도 490년을 상징으로 보았다(House, 157).
25절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 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난다고 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대제사장이시고 동시에 왕이시다(마 27:11; 히 4:14-15, 5:6). 490년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고 정해지지 않은 긴 시간의 상징인 것이다.
26절은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이어서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린다고 했다. Fausset은 세상 권력을 대표하는 로마가 와서 메시야를 죽이고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다(Fausset, 437). 그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린 것 같다고 했다. 이는 완전히 파괴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모습을 묘사한 말이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다고 했다. 완전히 파괴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27절은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동안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진다고 했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믿는 자들을 심판하고 예배와 헌금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말씀은 성경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응답이다. 다니엘이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성전의 회복을 간구했을 때 즉시 응답해 주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면 즉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 응답하신 내용 중에 하나님의 성전의 회복의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의미는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핍박과 환란이 있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핍박하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지만 그 긴 기간이 지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환난과 핍박을 견디며 예배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