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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다니엘 › 9:4-15

Dawn Word

다니엘 9:4-15

다니엘의 기도 중 찬양과 백성들을 위한 회개

예루살렘 쪽으로 열린 창과 엎드린 사자 · 다니엘 6장

2020. 5. 30. · 안정섭 목사 · 다니엘 9장 강해 설교

다니엘 9:4-15 다니엘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그 모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

이전 말씀은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기도하기를 결심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다니엘이 예언을 읽고 기도한 내용 중에 찬양과 회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4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난 뒤 하나님 말씀이 가득 채워진 다니엘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 기도는 오늘날 기도의 모형이 된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며 기도한다. 여호와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이어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이어서 자복하고 말하기를 이라고 했는데 자복한다는 말은 죄를 고백한다는 뜻이다. Fausset은 자복한다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이고 중보자인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라 죄를 대신 담당하는 위대한 중보자인 메시야의 모형이라고 했다(Fausset, 432). 이제 머지않아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날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이렇게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또 이어서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크시다는 말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시라는 뜻이고 두려워한다는 말은 죄를 극도로 싫어하시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앞에 서야 하는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 하나님이 또 어떤 분이신가 하면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지키시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4절 마지막에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라는 말이 붙어있다. 주만 사랑하여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서만 언약을 지키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드린 뒤 다니엘은 5절부터 15절에서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 고백한다. 5절은 먼저 우리는 이미 범죄했다고 했다. 범죄했다는 말은 목표물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사기 20:16절에서 베냐민의 용사들이 물매 하나를 던지면 머리털 한 개를 맞추고 놓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할 때도 나왔다. 하나님의 목표물은 거룩한 삶인데 그걸 맞추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목표물로 삼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범죄했다는 말의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는 말은 형법에 어긋나는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 영광이나 성공을 목표로 살았다는 뜻인 것이다.

또 패역했다는 말은 원어에서 구부러지거나 비틀린 것을 뜻한다. 좁고 곧은 길을 구부러지게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곧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정해주신 그 길을 똑바로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엉뚱하게 구부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주신 말씀을 따라 산다고 말하는 것이다. 범죄란 의도적으로 엉뚱한 목표를 정해 놓고 사는 것이라면 패역이란 의도적으로 그 말씀을 구부려 놓고는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척 하는 것이 패역이다.

행악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죄를 범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해치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반역한다는 말은 죄를 범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한다는 뜻인 것이다. 그 결과 떠났다고 한다. 떠났다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한 뒤 돌아서서 떠나가는 모습이다.

무엇을 떠났는가 하면 두가지이다. 주의 법도과 규례를 떠났다는 것이다. 법도란 명령을 내릴 권위를 강조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떠났다는 뜻이다. 또 규례란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들을 말한다. 명령에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현명한 재판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도 이런 규례에서도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의 권위와 하나님의 재판 기록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모세오경에 나타난 법도와 역사서들에 나타난 현명한 재판 기록들을 다 버리고 떠났다는 뜻일 것이다.

6절은 주의 종 선지자들의 주의 이름으로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구약의 예언서들에 나타난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에서 완전히 돌아선 이들에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 모든 예언자들이 전한 공통된 말씀이다. 그렇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돌아오라 했는데 듣지 않고 계속 자기들 원하는 길로 갔다는 것이다.

7-8절에서 다니엘은 주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수치가 대조된다. 7절은 먼저 여호와께는 공의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떠나간 사람들의 성이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서 벌거벗겨진 채 끌려가게 하셔서 수치를 당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은 유대 땅에 남겨진 자들이고 먼 곳에 있는 자들은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다. 즉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다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주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절도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9절은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주께 반역하였지만 그래도 주 하나님께는 여전히 귱휼과 용서하심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나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10절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불쌍히 여기시며 용서하시려고 돌아오라고 하시는데도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와서 그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1절은 5-8절에서 이미 말한 내용과 연결이 된다. 먼저 모든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길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5절에서 범죄하고 패역했다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말은 6절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다는 것은 7절에 나온 수치를 당했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다는 것은 신명기 28:15절에 나온 대로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8절과 연결이 된다. 그것은 자신들이 주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절은 모세의 율법에 약속된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이란 통치자들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통치자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이러한 심판은 온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잡혀가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폐허가 된 것과 같은 것은 세상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없다는 것이다.

13절은 또 다시 반복해서 말한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자신들에게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은 먼저 죄악에서 돌아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4절은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고 계시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간직하고 계시다가 끝까지 듣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내리셨다는 뜻이다. 원문에서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은 다 공정하시고 우리가 그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고 하나님께 있지 않다는 것이다.

15절은 출애굽 때 자신들을 인도해 내신 일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했다고 말한다. 이는 지금까지 그렇게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자신들을 인도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기 32:11-14절에서 금송아지 숭배로 그 백성을 멸하시려는 하나님 앞에 간구하던 모세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출애굽 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자신들을 다시 한번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달라는 뜻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의 죄도 형법상의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공의를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 영광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길을 구부려 놓은 것이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라고 했는데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말씀만 골라서 받는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담긴 율법서와 현명한 재판 기록인 역사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선지자들의 책들까지 다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 주님 오셔서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좁은 길로 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갖고 있다. 그 말씀을 따라 살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도들의 편지들도 갖고 있다. 끝까지 순종하지 않으면 완전히 망할 것이고 순종하는 자들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계시록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목표물로 삼으며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지켜주는 부적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수까지도 참고 사랑하라고 우리 주님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잘해주고 이익이 되는 사람만 사랑하며 끼리끼리 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처럼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언제든지 돌아서기만 하면 그 품에 안아 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녁을 목표로 삼는 삶으로 돌아서는 길은 오직 말씀 뿐이다. 하나님 말씀을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만 골라서 보지 않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으며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 영광을 목표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목표로 삼고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망할 자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길 몸부림치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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