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3:7-16 믿는 자를 위협하는 어떤 세상의 강한 힘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실 심판의 불이신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그분과 동거하는 자가 되라.
하: 하나님만 두려워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하나님의 말씀만 두려워 떨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진짜 보물은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라 했다. 이제 왜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 진짜 보물인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7-9절은 빠져나갈 길이 안보이는 절망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7절에는 용사와 사절이 등장한다. 싸워 이길만 하면 용사들이 나가 싸우는 법이다. 만약 이길 가능성이 없다면 사절을 보내서 항복하고 요구 조건을 들어주겠다며 화해를 요청하는 법이다.
그런데 7절에서 용사들은 거리에 앉아 울고 있다. 울고 있다는말은 큰소리로 소리내서 운다는 뜻이다. 시편 34:17절에서는 여호와께 살려달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죽게되었기에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이다. 용사들이 이런 상황이면 이제 곧 모든 백성들은 적군의 칼날에 유린당할 것이다.
또 평화협상에 나섰던 사절들이 슬피 운다고 했다. 이제 항복하고 시키는대로 할 테니 살려달라고 사절을 보냈는데 그 사절들마저도 거부한 상황이다. 대적들은 무조건 항복하겠다는데도 다 죽이겠다며 사절들에게 고하라고 한 것이다. 이제 모두 다 죽을 상황이다.
8절의 "큰 길마다 위험하며"는 상인들이 끊임없이 낙타를 타고 다니는 고속도로가 버려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행자들도 끊긴다고 한 것이다. 이제 곧 적들이 닥치는대로 예루살렘 사람들을 다 죽일 것이니 그걸 알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것이다. 또 적이 평화조약을 파기했다. 증인들이 무시된다고 했는데 맛소라 본문에는 성읍들이라고 되어 있다고 새번역 아래에 표시되어 있다.
영어의 NIV, NLT, RSV는 새번역처럼 오래된 사해사본을 따라 증인들로 번역했다. 이 증인들은 평화조약의 증인들이다.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그 증인들까지 무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ESV, NASB와 개역개정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후에 기록된 맛소라 본문을 따라 도시들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의 구조를 보면 고속도로가 버려지고 행인들이 끊기는 것과 도시들이 무시 당하고 도시 안에 있는 어떤 높은 사람도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이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앗시리아왕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든 큰 도시들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가장 높은 사람들조차도 완전히 무시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울고 고속도로와 도시들이 울었다면 이제 9절은 땅이 운다는 것이다. "땅이 통곡하고 고달파 하며" 라는 말은 땅이 울다 울다 지쳐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레바논이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레바논이 벌거벗겨진다는 뜻이다. 빽빽한 삼림으로 뒤덮여있는 레바논 산들이 벌거숭이가 된다는 것이다. 샤론은 풍성한 결실이 있는 좋은 땅인데 아라바 사막같이 된다는 것이다. 바산과 갈멜도 늘 푸른 풀밭과 풍성한 결실을 맺는 좋은 땅들이다. 아모스 4:1절의 바산의 살찐 암소들이란 표현을 보아도 좋은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땅들이 모조리 다 못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들도 전쟁포로들처럼 벌거벗겨진채 통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파괴로 전혀 소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자 10절은 일어난다는 말이 세번 나온다. 하지만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첫째 일어난다는 말은 "이제는 내가 활동을 시작하겠다"에 나온다. 이는 앉아서 보고만 계시던 주님께서 일어서신다는 뜻이다. 둘째 일어난다는 말은 "이제는 내가 일어나서"에 나온다. 이는 이미 높이 올려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일어서서 우뚝 서 계시는 모습이다. 셋째 "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 보이겠다" 라고 했다. 이는 계속 높이 들어올려지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제 계속해서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모습일 것이다.
11절은 이제 대적인 앗시리아에 대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앗시리아는 겨를 잉태하여 지푸라기를 낳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애를 쓰고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지만 겨를 힘들게 잉태하여 고통스럽게 낳은 것이 겨우 지푸라기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의 노력과 성취들은 마치 겨를 잉태하여 지푸라기를 낳는 것과 같이 헛된 것들이다.
12절의 뭇 민족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들이 마치 불에 탄 석회석과 같이 가루처럼 부스러진다는 것이다. 또 찍어다가 태우는 가시덤불처럼 재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비유들이지만 단단한 것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린다는 뜻이다. 뭇 민족은 이제 13절에서 먼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로 바꾸어 부른다. 먼곳에 있는 자들은 먼 곳에 있는 난라들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다. 모두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안그러면 모두 불에 탄 석회와 가시덤불처럼 다 재만 남아 흩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14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더니 이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로 옮겨진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이므로 성전에 있는 지도자들과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스스로 거룩한 자들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은 죄인들과 경건하지 않은 자들로 부르신다. 죄인들은 죽게 될 것이기에 두려워하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벌벌 떤다는 것이다. 석회와 가시덤불을 사르는 불이 이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사를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 가운데 누가 사르는 불을 견디어 내겠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견디어 내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15절은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견디어 낼 사람들이 누구인지 대답을 한 것이다. 이는 세 쌍으로 되어 있다. 첫째 쌍인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일반적은 삶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둘째 쌍은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과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세번째 쌍은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과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은 악한 일에 함께 참여하지 않기 위해 아예 귀로 듣지도 않고 눈으로 보지도 않는 사람이다. \ 16절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는 것이다. 안전한 곳이란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이다. 그곳에는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높고 안전한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과 늘 동거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다. 세상의 힘있는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힘으로 위협하겠지만 그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재가 되어 날아갈 자들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만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고 악한 일을 도모하지 않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자. 그 길이 하나님과 안전한 곳에서 동거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