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6:19-24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은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구해주셨고 그 대적들은 완전히 멸망하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다니엘은 죽을 것을 알고도 하루 세번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고 대적들은 다니엘을 왕에게 고소해서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사자들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 대적들은 사자들이 삼키게 하신 모습이 나온다.
19절에서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LaCocque는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관습의 관점에서 보면 그 희생자가 고문을 받고 그 다음날 죽지 않으면 그 희생자는 용서되는 것이라 했다 (Lacocque, 147). 바빌론은 페르샤에게 정복되었지만 페르샤 역시 같은 관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왕은 밤새 금식하고 기도하다가 날이 밝아오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왔을 것이다.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절에서 왕은 굴 입구에 가까이 와서 슬피 소리질러 물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라고 외친 것이다. 혹시나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살리실 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혹시나 그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살려 주셨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른 것이다. 그러나 다리우스가 신자가 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많은 신들을 믿던 다리우스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혹시나 다니엘을 살려 주셨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뿐이다.
21절에서 다니엘은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본문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죽은 줄로 알았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사자 굴 속에서 들려왔을 때 왕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며 소름이 끼쳤을 지 상상해 볼 수 있다. 22절에서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아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하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했다. House는 여기서 무죄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대적들이 고소한 그 죄에 대해서 무죄라는 뜻이라 했다(House, 123).
그의 천사란 누구일까? Hartman & Di Lella는 천사들 중의 한 명일 것이라 했다(Hartman and Di Lella, 200). 그러나 Miller는 주의 사자라고 했다(Miller, 187). Miller가 말하는 주의 천사란 창세기 16:11-14절과 22:15-16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란 곧 여호와 자신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나를 구해주셨다" 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Miller는 주의 사자란 70인역과 같이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 외에는 다른 의미일 수 없다고 했다(ibid.).
23절은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며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 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라고 했다. 다니엘이 조금도 상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34절에서도 "약속을 받고 기도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4:19절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라" 라고 한 것이다.
24절은 왕이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굴에 던져 넣게 하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의 뼈까지도 부서뜨렸다고 했다.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던졌다는 것은 당시 페르샤의 법에 따른 것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Herodotus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페르샤에서는 모든 친척들이 함께 유죄인 것이다(Herodotus, Histories, 3-119).
Herodotus의 기록을 보면 Darius왕이 온 가족이 처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슬피 우는 여인을 보고 불쌍히 여겨 한 명을 살려주겠다고 했을 대 그 여인은 "모든 나의 형제들" 이라고 답을 해서 왕을 놀라게 했다. 왕은 어째서 네가 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살려 달라 하지않고 덜 사랑하는 형제들을 살려 달라 하느냐 물었을 때 여인은 "신께서 허락하시면 나는 다른 남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기에 다른 형제를 가질 수는 없다" 라고 대답한다. 왕은 그녀의 형제 한 명을 살려주고 그녀의 장남을 살려준다(Ibid.). 이는 당시 페르샤 사람들의 공동체 중심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전통과도 많이 닮았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도 지켜 주신 것은 그 믿음 때문이지 그의 완벽한 의로움 때문은 아니다. 죽이려는 음모에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그 믿음 때문이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의로움이나 거룩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고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이다. 다니엘이 그러한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건져 달라 하지 않고 평상시와 똑같이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똑같이 기도하며 감사를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