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10-18 다니엘은 죽을 것을 알고도 하루 세번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고 대적들은 다니엘을 왕에게 고소해서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다리오가 나라의 조직을 정비하고 다니엘을 세명의 총리 중 한명으로 세우자 시기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죽을 법령을 만들어 왕에게 승인을 받았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10절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기도했다. 윗방이란 다락방이 아니고 지붕의 평평한 곳에 있는 작은 방이고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의 구조이다(Miller, 182; Slotki, 49). Montgomery도 집의 평평한 지붕 위의 한 구석에 높여진 분리된 방이거나 건물 꼭대기의 창문이 달린 탑 같은 것이라고 했다(Montgomery, 274). 그곳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시편 55:17절을 보면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드렸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하루는 해가 지면 시작이 되기 때문에 저녁 기도가 제일 먼저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이다.
다니엘은 의도적으로 나라의 법을 어긴 것이다. 로마서 13:1-2절에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는데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것인가? 로마서에서는 먼저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 핍박하는 유대인 원수들을 사랑하며 핍박하는 이방인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라는 뜻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법과 사람들의 법이 충돌하지 않는 범위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5:29절에서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11절은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지체가 높은 고위 관리들이 체신머리도 없이 스파이처럼 몰래 숨어서 다니엘이 기도하는지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12절에서 왕에게 가서 다니엘이 법을 어겼다며 그 법은 왕도 고치지 못하는 규례라고 했다. 왕이 다니엘을 아끼는 것을 알기에 왕도 고치지 못하는 법으로 만들게 하고는 왕도 고치지 못하는 법이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킨 것이다.
13절에서 다니엘을 고소하던 물리들은 첫째로 다니엘이 유다 자손 중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유다 사람들은 바빌론 사람들이 잡아온 것이고 페르샤 사람들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Miller는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을 말한 것은 다니엘을 멸시하면서 불순종하는 경향이 있는 족속들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라고 했다(Miller, 184). 둘째로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고소했다. Miller는 금령만이 아니라 왕까지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왕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소한 것이라 했다(Ibid.). 결국 다니엘은 왕까지도 별 것 아닌 존재로 여기며 그 마음에서는 왕의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다고 고발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 세 번씩 날마다 그렇게 왕과 왕의 금령을 대적한다고 말한 것이다.
14절에서 왕은 이 말을 듣고 다니엘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였다고 했다. 왕을 별 것 아닌 존재로 여긴다고 고발했다면 사실 다니엘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어야 맞다. 그러나 왕은 고소한 신하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저들의 덫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다니엘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하다가 해가 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Montgomery는 건져내려고 했다는 말이 올가미에 걸린 동물이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칠 때 쓰는 말이라 설명했다. 왕은 법률가들과 상담하면서 음모를 꾸민 자들에게 반격하려고 애를 쓴 것이라고 했다(Montgomery, 275). 이는 왕이 그만큼 다니엘을 신뢰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니엘이 얼마나 신실하게 왕을 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5절은 해가 질 무렵에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 나아와서 왕이 도장을 찍은 그 법은 왕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왕은 다니엘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그 법을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찾지 못한 것이다. Miller는 그 법은 죄가 드러난 바로 그날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이며 다니엘은 정오에 기도하다가 대적들에게 걸린 것이라 했다(Miller, 184). 다리우스는 다니엘을 구하려고 고민한 시간이 겨우 그날 오후 뿐이었고 시간이 촉박해서 더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왕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에 16절에서 왕이 명령하니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고 했다. 왕은 다니엘에게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라고 말을 했다. 다리오는 3:15절에 나온 느부갓네살과 대조된다. 느부갓네살은 이제라도 자신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즉시 풀무불에 던지겠다면서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라고 말했었다. 느부갓네살은 어떤 신도 자신의 손에서 구할 수 없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다니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인 다리오도 하나님 사랑을 가지고 사랑했던 것이다.
17절은 이에 돌을 굴려 막으매 왕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했다고 했다.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Miller는 쇠사슬로 돌 앞에 걸쳐 놓고 진흙을 붙인 뒤에 왕과 귀족들의 반지로 도장을 찍은 것이라 했다(Ibid., 185). 여럿이 함께 찍었기에 마른 뒤에는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진흙에 찍힌 도장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왕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다니엘의 탈출 가능성은 전혀 없게 되었다.
18절에서 왕은 궁에 돌아가서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했다고 했다. Miller는 왕이 밤이 새도록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고 추정하며 다니엘의 하나님께 기도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Ibid., 186). 본문에 분명히 나와있지 않기에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다리오가 금식하며 모든 오락을 금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Montgomery는 오락을 금했다는 말이 음식들과 악기들이나 연주가들과 춤추는 여인들과 첩들까지 모두 다 거부했다는 뜻이라 했다(Montgomery, 276). 다리오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느부갓네살과는 분명히 다른 신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 말씀에는 다니엘에 대한 다리오 왕의 사랑이 강조되어 있다. 이는 다리오의 성품이 훌륭해서 가 아니다. 이는 다니엘이 얼마나 왕에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대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다니엘은 말이나 행동으로 진실되게 왕을 섬겼을 것이다. 그래서 왕의 사랑과 신임을 받았기에 다른 신하들의 시기를 받은 것이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했다. 또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도 사랑했던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행동만으로는 다리오 같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신뢰를 받을 수는 없다. 다니엘은 분명 말 한 마디에도 최선을 다해서 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말은 함부로 내 뱉으면서 행동만 진실할 수는 없다. “나는 말은 비록 거칠지만 마음이나 행동만은 진실해!” 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믿는 자들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만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모두 위선일 뿐이다. 나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