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6:1-9 다리오가 나라의 조직을 정비하고 다니엘을 세명의 총리 중 한명으로 세우자 시기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죽을 법령을 만들어 왕에게 승인을 받았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 그 글씨들을 해석하게 하셔서 벨사살의 때를 다 세어 보셨고 그 행동의 무게도 다 달아 보시고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누신다는 것을 벨사살에게 알게 하셨고 바로 그날 밤 그대로 이루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다니엘을 총리로 세웠을 때 다른 사람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을 법을 만들게 한 내용이다.
1절은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리오 라는 이름이다. 당시 페르샤 제국의 왕은 고레스이고 다리오 라는 왕은 역사에서 훨씬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 Matthews와 Pentecost는 두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다리우스는 고레스의 다른 이름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페르샤 군대를 이끌고 바빌론을 침공했던 페르샤 장군 우그바루(Ugbaru)를 가리키는 이름일 것이라고 말한다(Matthews, Dan 6:1; Pentecost, 1347).
고관 120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다는 말은 총독을 120 세웠다기 보다는 작은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를 120명 임명했다는 뜻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샤 제국은 20개의 지방으로 나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Herodotus, Histories, 3.89).
2절은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다니엘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관들로 세명의 총리들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120명의 관리들은 셋으로 나뉘어 자신들의 총리에게 보고하고 세명의 총리들은 왕에게 그 내용을 간추려서 보고했을 것이다. 새로운 통치자는 정복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통치조직을 신속하게 정비하고 관리들을 임명한 것이다.
3절은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탁월한 영이 그 안에 있었다" 라는 뜻이다. House는 이 말이 단순히 훌륭한 성품을 지녔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어 일하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했다(House, 119). 다리우스도 다니엘이 가진 뛰어난 지혜가 그 안에 있는 신의 영, 즉 성령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일 것이다. 다리우스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것과 벨사살이 본 글씨를 해석한 것에 대해서도 다 들었을 것이고 다리우스 자신도 다니엘의 그러한 놀라운 능력을 실제 경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4절에서는 총리들과 고관들이 시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했지만 아무 근거나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다니엘을 시기하여 제거하고자 하는 원수들조차 다니엘의 훌륭한 점 세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충성되다는 말이다. 이는 믿고 의지할 만하다는 뜻이다. 왕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그릇됨도 없다는 말은 태만하여 일을 미루고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셋째로 아무 허물도 없다는 말은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일등과 같은 과실이 없다는 뜻이다.
5절은 그들이 말하기를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고발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다니엘을 제거하고자 하는 대적들이 계속 감시하는데도 아무런 잘못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이는 다니엘이 사람들의 법을 따라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의 법으로는 아무 흠도 찾을 수 없으니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의 법에서 흠을 찾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6-8절은 총리들과 관원들이 함께 모여서 왕에게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왕에게 새로운 법을 만들어 달라고 청하는 모습이다. 6절에서 총리들과 다른 관원들이 모였다는 말은 아람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Miller는 이 말은 평상시 왕 앞에 질서를 따라 아뢰는 장면이 아니라 폭동의 장면을 가리킨다고 했다(Miller, 180). Fausset은 왕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것을 알고 왕이 심사숙고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이라 했다(Fausset, 412). 떼거리로 모여들어 폭동을 일으킬 듯한 태도로 왕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이는 마치 사극의 한 장면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왕 앞에 서 있는 관리들 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모든 관원들이 다 모여들어 왕 앞에 엎드려 통촉하옵소서를 외치고 있는 장면과도 같다고 본다.
7절은 이들이 모여서 의논한 것이 있다며 한 법을 만들어서 금령으로 내려 달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앞으로 삼십 일 동안에 임금님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넣기로 한다는 것이다. Fausset은 이것이 당시 페르샤의 왕은 으뜸가는 신인 Ormuzd의 대리인이고 왕 옆에 있는 일곱 왕자들은 Ormuzd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Amshaspands를 대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Fausset, 413). 그렇기 때문에 왕에게 경배하지 않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넣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는 충성심을 가장해서 다니엘을 죽이려는 간계이다.
8절은 왕이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즉시 결재해 달라며 결재서류를 들이미는 장면이다. 이들은 이미 문서를 다 만들어 가지고 왔다. 이제 금령을 세우고 문서에 도장만 찍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번 세우면 다시 고치지 못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한번 도장을 찍으면 왕이라도 취소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9절은 그리하여 다리우스 왕은 그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는데도 악한 자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낸다 해도 우리 역시 이러한 시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신실한 신자라 해도 이러한 시련을 기뻐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흔히 요한복음 3:16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한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실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러면 누구나 다 "아멘!" 라고 외친다.
그러나 Duguid는 이러한 믿음이 거짓 믿음이라고 말하며 핍박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방향에서 온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삶을 타락한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구별해 낼 것을 기대해야만 한다고 했다(Duguid, 93).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수많은 악한 자들이 우리를 시기하여 넘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견디며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처럼 주님의 말씀만 증거하며 삶으로 몸부림치며 따라간다면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보여주며 살아간다면 불편하게 생각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광신자로 몰아 대며 세상의 방법을 따라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살라고 권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시기로 고난을 받게 되더라도 우리는 주님 말씀만 따라가며 불편한 말씀을 증거하고 듣기 싫어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 조차도 사랑하며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간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시기 질투에서 오는 핍박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아담 이후에 타락한 사람들이 본래 악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