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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다니엘 › 5:10-16

Dawn Word

다니엘 5:10-16

다니엘의 능력을 상기시켜주는 왕의 할머니

예루살렘 쪽으로 열린 창과 엎드린 사자 · 다니엘 6장

2020. 5. 15. · 안정섭 목사 · 다니엘 5장 강해 설교

다니엘 5:10-16 모두가 당황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의 할머니는 다니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어 왕은 다니엘을 불러 해석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이전 말씀에서 벨사살은 벽에 쓰인 글씨를 해석하면 큰 상을 주고 왕과 왕비 다음으로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해 크게 당황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왕비의 추천으로 다니엘에게 해석해 보라고 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10절에는 왕비가 등장한다. 왕비가 왕과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다고 했다. NIV는 직접 듣고 들어온 것처럼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는 단순히 "왕과 귀족들의 말들로 인해" 라고 되어있다. 초대받지 않은 왕비가 직접 들었을 가능성은 없다. Miller는 누군가 글로 써서 전해주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Miller, 159).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주로 말로 주고받았기에 글보다는 말로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여인은 벨사살의 부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벨사살의 왕비들은 5:2절에 보면 이미 잔치 자리에 있었다. 대부분 학자들은 이 여인이 벨사살의 어머니이거나 할머니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초대받지 않은 왕의 잔치에 불쑥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Miller는 벨사살의 할머니이거나 어머니일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며 벨사살의 아버지 Nabonidus의 아내이고 느부갓네살의 딸 Nitocris 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Ibid., 160).

이와는 달리 Goldingay는 이 왕비가 Nabonidus의 어머니였던 Adadguppi가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의 통치시에 생존해 있었다며 Adadguppi일 것이라고 말한다(Goldingay234).

분명한 것은 11절을 보면 이 여인은 느부갓네살 통치시에 다니엘이 했던 일을 목격한 목격자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벨사살의 할머니일 가능성이 더 높다.

10절 뒷부분에서 이 여인은 왕에게 영원히 살길 바란다고 말하며 왕은 놀라거나 얼굴이 창백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11절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당신의 왕국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왕의 부친이라는 말은 벨사살의 아버지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조상들을 아버지라는 말로 불렀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 왕 때 이어서 말하는 내용들은 신들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다니엘이 신들의 지혜를 가졌기에 바빌론의 모든 지혜자들의 어른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2절에서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은 원어에서 탁월한 영을 가졌다는 뜻이다. Miller는 이 말이 다니엘의 지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니엘 안에 주신 놀라운 이해의 은사를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Miller, 160).

지식과 지혜도 역시 신들의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니엘은 신들의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니 그를 불러 해석하게 하라는 것이다.

13절에서 특이한 점은 벨사살 왕이 다니엘을 벨드사살이라 부르지 않고 다니엘이라 부른 점이다. 이에 대해 Young은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이 느부갓네살의 신하들 중에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Young, 123). 느부갓네살이 잡아온 유다 자손 포로인지 묻는 것은 신분이 낮은 포로였던 다니엘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어 최고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을 말하며 다니엘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는 말일 것이다.

14절에서 벨사살 왕은 다니엘 안에 신들의 능력이 있다고 들었다며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네 안에서 발견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Miller는 벨사살이 4:8절과는 달리 "거룩한" 이라는 말을 생략한 것이 그의 악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다(161).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느부갓네살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다고 말했는데 반해 벨사살은 거룩하다는 말을 빼 버려서 잡신들의 신기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말한 것이다.

15절은 자신의 모든 지혜자들이 이 글을 일고 해석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16절에서 다니엘에게는 해석하고 푸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 글을 읽고 해석하면 앞에서 바빌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한 최고의 상을 주겠다고 말한다. 벨사살은 두려움에 떨며 다니엘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느부갓네살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가 전혀 없다.

오늘 말씀에 나온 벨사살의 할머니는 다니엘의 놀라운 능력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의 아내였던 그녀는 하나님을 경외한 것 같지는 않다. 그 놀라운 능력을 들은 벨사살은 다니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묻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에 떨며 그 글씨의 의미를 알고 싶은 것 뿐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전해 듣는다 해도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세상은 단지 눈 앞의 어려움만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마치 점쟁이를 찾아가서 해결 방법을 듣고 싶어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해도 그 기적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지는 않는다. 비록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난다 해도 그 때 뿐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는 않는다. 마태복음 16:4절에서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믿음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난다고 한 것이다. 요즈음처럼 어려울 때 일수록 기적을 통해 벗어나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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