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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다니엘 › 4:10-27

Dawn Word

다니엘 4:10-27

느부갓네살의 두번째 꿈을 해석한 다니엘

2020. 5. 9. · 안정섭 목사 · 다니엘 4장 강해 설교

다니엘 4:10-27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면서 회개하고 공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면 계속 평안할 것이라 했다.

이전 말씀에서 편안하고 호화로운 삶을 살던 느부갓네살은 꿈으로 인해 번민하게 되고 바벨론의 지혜자이 해석해주지 못하자 다니엘의 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다니엘에게 해석해 달라 한다. 이제 오늘 말씀은 꿈의 내용과 다니엘의 해석을 담고 있다.

10절에서 느부갓네살이 침대에 누워 받은 환상을 말한다. 느부갓네살은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높이가 높았다고 했다. Miller 는 여기서 땅이란 문맥상 느부갓네살의 영토를 말한다고 했다(Miller, 132) 그 영토 중앙에 나무가 있는데 키가 높았다는 것은 그의 제국에서 그가 독보적인 존재로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11절은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졌다고 했다. 이는 아주 튼튼하게 자랐다는 뜻이다. 또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고 그 땅 전체에서 다 보인다고 했다. 12절은 나무의 크기만이 아니라 잎사귀도 아름답고 열매도 모든 사람들이 다 먹을만큼 많았다고 했다. 사람만 먹이는 것이 아니다. 들짐승들도 그 그늘 아래서 쉬고 공중의 새들도 그 가지에서 산다고 했다. 육체를 가진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는다 했다. 이렇게 크고 풍성한 나무는 느부갓네살을 나타낸다. 4절에서 평강하다는 말에서 이미 느부갓네살이 이처럼 크고 풍성한 나무와 같았다는 것을 암시했었다.

13절은 또 다시 느부갓네살이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 본것을 말한다. 느부갓네살의 꿈의 장면이 바뀌는 것이다. 한 순찰자 곧 거룩한 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했다. 순찰자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를 뜻한다. 느부갓네살이라는 나무를 관리하는 과수원지기와도 같다. 느부갓네살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가 잘못된 것이 있기에 경고하려 내려온 것이다.

14절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고 했다. 그 나무가 베어지니 그 나무의 보호를 받던 모든 짐승들과 새들도 다 쉴곳을 잃게되는 것이다. 15절은 그 베어진 그루터기를 쇠와 놋줄로 동이라 했다. 대부분 쇠와 놋줄로 동이라는 말이 그 그루터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Fausset, 402; Miller, 133; Pentecost, 1342).

그러나 Carpenter는 묶여져있는 그루터기가 왕을 일정기간 잡아 둘 질병에 대한 정교한 언급일지도 모른다고 했다(Carpenter, 368). Carpenter의 말은 느부갓네살의 상태와 그의 회복에 대해 좀 더 정교한 그림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어지는 말에서 하늘의 이슬에 젖도록 내버려 두고 땅의 풀들 가운데서 짐승들과 함께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무나 풀들이 이슬에 젖는 것은 회복시키는 것이다. 짐승들 가운데서 그 몫을 얻는다는 것도 역시 짐승들의 배설물로 인해 나무가 회복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느부갓네살을 질병으로 쓰러뜨리셨지만 계속 보호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뜻이다.

16절은 그 마음이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않다고 했다. 짐승의 마음을 주신다고 했다. 이는 4절에서 집에서 편히 지내고 궁궐에서 호화롭게 살아가던 모습과는 반대의 그림이다. 짐승처럼 털을 기르고 손톱 발톱도 길게 자라고 짐승들처럼 자연에서 풀들을 먹고 사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호화롭게 살던 느부갓네살이 자연 속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일곱 때를 지낸다는 것이다. 일곱이란 완전수이기에 일주일이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 한주가 다가오듯 칠년이 지나가면 새로운 때가 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17절은 교만한 느부갓네살을 이렇게 낮추신 이유가 나온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라고 했다. 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고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러뜨리시고 낮추셔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길에 버려진 똥 덩어리처럼 낮추어졌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낮추신 느부갓네살을 회복시키신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신의 꿈을 말한 뒤 18절에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그 꿈을 해석하라고 한다. 바벨론의 지혜자들 안에 있는 신들은 해석을 못했지만 다니엘 안에 있는 거룩한 신들은 해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19절에서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에 번민했다고 했다. 다니엘은 그 꿈의 의미를 알기에 두려워하고 고민하면서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왕은 고민하지 말고 말하라고 한다. 다니엘은 그 꿈이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고 왕의 대적들에게 응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러한 말은 왕에게 충성심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말이다.

20-21절은10-12절에서 왕이 말한 꿈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22절에서 그 나무가 왕이라고 말한다. 왕지 자라서 견고해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까지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에까지 미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23절은 12-15절의 내용을 다시 말하면서 24절에서 그 일이 왕에게 미칠 것이라고 그 뜻을 말한다. 25절은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라 했다. 풀이란 모든 채소과 그 밖의 풀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그렇게 먹고 또 들짐승들처럼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것이다. 또 일곱 때를 그렇게 지낸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완전히 낮아지고 겸손해질 때까지 그렇게 두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의 나라는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이가 다스리시고 그분의 뜻대로 그분이 원하는 자에게 그 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26절에서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담겨두라 한 것은 왕이 깨달은 후에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야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27절에서 다니엘은 자신의 권고를 기쁘게 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죄를 사한다는 말은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라는 뜻이다. 교만의 죄를 완전히 끊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회개한 다음에는 공의를 행하라고 했다. 회개하기만 하고 그대로 있으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잘못된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고 더 이상 그러한 교만을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 기뻐하시는 의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또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보여줌으로 그 죄를 사함 받는 것이다. 그러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길게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꿈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경고이다. 만약 끝까지 듣지 않는다면 그 꿈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경고이다. 경고를 깨달았을 때 회개하는 것이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느부갓네살들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목회자가 느부갓네살인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재물이나 세상권력이나 명예를 많이 가진 자가 느부갓네살인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서 많이 알면서 경건하게 살아간다는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인 경우도 있다.

내가 혹시 느부갓네살이 아닌가 진단해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늘날 느부갓네살도 다니엘 당시 느부갓네살처럼 자신이 원하는대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가려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자신이 가진 영적 권위나 세상의 권세로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보고 끌고 가려고 한다면 느부갓네살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보고 끌고 가려고 한다면 느부갓네살이다. 교회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며 다른 사람을 높여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느부갓네살이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교만을 완전히 박살내지 않으면 누구나 다 반드시 느부갓네살이 된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안해?" 라고 마음 속으로 말하며 마음 속으로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느부갓네살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무시해 버리기 쉽다. 내가 얼마나 짐승 같은 존재인지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 깨달으면 안된다. 베드로전서 5:6절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라고 했다. 지금 깨닫고 나를 겸손히 낮추고 남을 높인다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높이실 것이다. 절대로 내가 나를 높이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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