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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다니엘 › 3:28-30

Dawn Word

다니엘 3:28-30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믿지는 않았던 느부갓네살

예루살렘 쪽으로 열린 창과 엎드린 사자 · 다니엘 6장

2020. 5. 6. · 안정섭 목사 · 다니엘 3장 강해 설교

다니엘 3:28-30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조서를 내리고 그들을 더욱 높여주었다.

이전 말씀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 주셔서 느부갓네살과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 주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를 본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 사람이 번영을 누리게 해 주는 내용이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본 느부갓네살은 28절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그를 의뢰하는 자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Miller는 천사라는 말이 한 천사를 가리키거나 하나님 자신을 가리킬 수 있다고 했다(Miller, 125). 창세기 18:1-2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세 사람이 13절에서 여호와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에서 천사를 보았다고 해 놓고는 나중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한 것이다. 세 사람과 함께 했던 사람이 천사인지 하나님 자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서 보호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은 이 세사람처럼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들이다. 이방인 왕이 하나님만 의뢰하는 이 세 사람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만 의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예배하는 대신에 왕의 명을 어기고 자신들의 몸을 왕에게 내놓는 것이다. 목숨이 위험하게 될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목숨까지 내 놓으면서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 세사람은 이러한 믿음을 이방인 왕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보여준 것이다.

29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구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왕은 조서를 내린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만약 어긴다면 그 몸의 부분 부분이 다 쪼개질 것이고 그 집은 거름더미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같은 방식으로 구원할 수 있는 신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서가 느부갓네살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능력을 두려워한 것이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다. Miller도 이러한 조서는 느부갓네살이 여호와를 따르는 자들을 잘못 다루었기 때문에 그 신의 보복의 위험이 두려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달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Miller, 125).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신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많은 신을 섬기는 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것과 믿고 의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30절에서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더욱 높였다고 했다. 원어에서 더욱 높였다는 말은 새번역처럼 그들을 번영하게 했다는 뜻이다. 이는 물질적인 보상과 함께 사람들의 존경도 받게 했다는 뜻이다. 전에 높은 자리에 세웠을 때도 질투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보상과 더 높은 지위를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더 큰 질투를 일으켰을 것이다.

기적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줄 수는 있지만 믿음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로마서 10:17절에서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했다. 기적을 보고 믿었다는 사람들은 나중에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게 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사라져 버린다.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하던 도마에게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20:29절에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 하신 것도 역시 믿음이란 기적을 체험하거나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Duguid도 "이 경험으로도 느부갓네살의 마음은 깊은 곳까지 바뀌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Duguid, 59). 느부갓네살은 자신도 이 하나님을 믿고 이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만약 느부갓네살이 진짜로 믿었다면 룻처럼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라고 말했을 것이다(룻기 1:16). 그는 여전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직접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신다면 사람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게 될 것이지만 믿지는 않게 될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이 세사람처럼 하나님께 몸을 맡기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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