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3:8-18 점성가들이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고발했지만 이들은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불 속에 던져지더라도 하나님만 경배하겠다고 고백했다.
이전 말씀에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들은 꿈의 해석과는 달리 전체가 금인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왕국이 영원하게 하려고 했다. 오늘 말씀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고소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8절은 어떤 점성가들이 유다 사람들을 고소했다고 했다. 새번역과 NIV와 NLT는 점성가로 번역했지만 개역개정과 ESV와 NASB는 갈대아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아람어로 "카스다이" 라는 말은 점성가라는 뜻이지만 갈대아 사람을 뜻하는 일반적인 말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말이 일반적인 바벨론 사람들을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 바벨론의 관리들이나 귀족들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점성가를 뜻한다고 말한다(Miller, 116; Carpenter, 354; VanGemeren, 594).
이럴 경우 다니엘의 다른 곳에서 이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면 알 수 있다. 2:5과 2:10에서 "갈대아인들" 은 일반적인 모든 갈대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대아의 술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4:4절과 5:7절과 5:11절에서는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 등의 말과 나란히 나열해 놓았다. 그렇다면 갈대아라는 말은 일반적인 모든 갈대아 사람들이 아니라 왕의 곁에서 왕에게 미래 일을 알려주던 점성가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들은 다니엘 때문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지만 또한 자신들이 다니엘에게 밀려난 것에 질투하는 마음도 가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고소한 것이다.
9절은 이들이 왕에게 "만수무강하시길"
기원했다. 이는 영원히 사시라는 뜻으로 왕에게 하는 전형적인 인사말이다. 10-11절은 왕이 내린 명령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말이다. 12절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이들을 세가지로 고소한다. 첫째 왕을 무시하고 왕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점성가들은 다니엘은 빼놓고 셋만 고소했다. 그 이유에 대해 Pentecost는 첫째 4:8절에서 "그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 라고 했기에 다니엘에게는 참석하도록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다니엘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곳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 점성가들은 다니엘의 지위 때문에 감히 다니엘을 고소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Pentecost, 1339).
이 중에서 다니엘이 다른 곳에 가서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도 이 고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 자리에 없지만 다니엘도 마찬가지로 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7절에서 왕은 하나님은 다니엘의 하나님은 모든 신들 가운데 최고라고 했기에 자신의 신 만을 섬기도록 면제를 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니엘이 왕의 꿈을 알고 해석한 것 때문에 다니엘은 자신의 신만 섬기도록 특권을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13절에서 느부갓네살은 이들을 데려오라 했고 14절에서 왕은 이들에게 진짜로 자신의 신을 섬기지 않고 절하지 않았느냐고 문초를 했다. 그러면서 15절에서는 지금이라도 절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을 것인데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낼 수 있겠냐고 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통해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만이 으뜸가는 신이라고 고백했으면서도 이번에는 어떤 신도 자신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낼 수 없다고 망언을 한 것이다. Miller는 느부갓네살이 여호와께 고의적으로 도전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Miller, 118). Ferguson은 그들의 신과 동시에 그들의 용기에 도전한 것이라고 했다(Ferguson, 751). 그런데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분명히 안다. 이집트 왕 파라오가 하나님께 도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해주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16절에서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라고 답했다. 이는 이미 불 속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17절에서는 불 속에 던져지더라도 하나님께서 구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구해주실 것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18절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간섭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 지라도" 라고 한 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문제나 고난에서 건져 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항상 그렇게 구해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고난과 시험을 당하게 하셔서 그 믿음을 굳게 세워주시려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험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다. 욥기 13:15절에 보면 욥도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다" 라고 했다.
우리가 모든 일이 잘될 때만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옳다며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그래서 불 속에 던져져서 죽게 될 때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는다 해도 자신들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업이 망하고 직장도 잃고 먹고 살 길이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 그보다 더 심한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만 믿고 가야 한다. 비록 불 속에 던져지더라도 하나님만 믿고 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